일년의 두어번 불면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는 내가 (한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새벽 네시에 잠을 깨야 했던건, 24시간 틀어두는 침대쪽의 모기약도 소용없이 물린 여섯개의 붉은 자국때문이었다. 남들 한번 물릴때 최대 열번도 물릴 수 있는 체질은 아무리 고된 하루에 지쳐 잠들었어도 한방 물리고 나면 소머즈 귀를 만들어준다. 보통은 잠에 취해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을 택하는데, 피곤에 비례해 잠투정도 늘어나는 이유로 온갖 짜증을 다 내며 꿈틀대고 있자니 j씨가 척척 에어컨을 틀고 모기약을 가져다 발라주고 도닥여 재운다. 물론 모기에 물렸다고 네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말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결혼하니 좋냐는 질문을 흔히 받고, 별다를 것 없다는 답을 흔히 했다. 5년..
추운 날에나 내내 가고 싶던 동남아가 요새는 이상하게 날이 더운데도 자꾸만 생각난다. 들이쉬는 공기도 뜨겁고 내리쬐는 햇볕도 뜨거운 차도 옆에서 멍하니 서서, 정자에 길게 코를 올리던 코끼리라던지 현지인 가이드 언니랑 걸었던 밤거리라던지 해질녘에 걸었던 바닷가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가고 싶다- 라고 입버릇도 생겼다. 정작 더운건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피곤한 것도 마찬가지인데도 더운 나라는 갈때 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차곡차곡 쌓인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인상이 험상궂다. 속으로 험한 말을 잔뜩 늘어놓다가 깜짝 놀라 멈춘다. 밖이야 어떻든 안은 평온해야 하는데 밖이나 안이나 꼭 같게 전쟁터 같다. 단 걸 도통 못 먹었는데도 단 게 그렇게 먹고 싶다. 잔뜩 쌓..
어제 일을 하면서 그렇게(메신저 대화명이 쌍-욕 직전이었다, 속은 오죽했겠어)까지 화가 났던건 대체 왜 '일'때문에 그림조차 그리러 가지 못해야 하는가였다. 난 먹고 살기 위해서도 돈을 벌긴 하지만,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이것 저것 '내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건데,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관둘 수는 없다. 타고난 일복을 걷어찰만한 처지가 안된다. 부유한 삶은 됐지만 가난하게는 살고 싶지 않으니까 난 아마 안될 거야, 평생 이 바닥에서 이렇게 허우적 거리겠지. 이 정도까지 되어버리니 입에서는 먹을 걸 달라고 하고 속에서는 먹을 걸 넣으면 다 토해내겠다 - 라고 시위중이라 먹을 걸 씹다가 삼키지 말고 뱉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이건 뭐 껌도 아니고. 자기..
가장 전제에 깔아두는 것은 항상, 나는 (수는 많고 깊이는 얕은 여느 것들과 마찬가지로) 디자인에 재능이 없고 그 와중에 게으르다는 것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는 걸 할 땐 의욕이 충만하고 재미 없는 것을 할 때면 미루고 미루다 먹고 살려니 인상쓰며 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가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를 계속 하고 있는 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밥 벌어 먹고 살기에는 별다른 투자없이 사용할있는 능력치가 이것 뿐이기 때문이고, 가-끔은 재밌는 디자인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직업이 안그러겠냐만은 웹디자인은 '지인'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입구가 넓지만 출구도 넓거든. IT 직군 중에 가장 박봉이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데다, 정말 괜찮은 커..
욕심내고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다 넣으려니 하기 싫어 질질 끌던 포트폴리오를 마쳤다. 잡다한 걸 빼버리니 금새 끝나더라. 필요한 인덱스 바로가기 기능까지 넣어두니, 구직 활동 할 무렵에 자기 소개서나 어여쁘게 만들면 되겠다. 3-4년 동안의 작업물만 모아두었는데 (그 이전의 2-3년분의 작업물은 하드가 죽었는데 다시 살리지 않은 관계로 없다) 뭔가 어-엄청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포폴에 안 들어간 것 들이야 말할 것 도 없을테다. 얕은 지식이 많은게 나은지, 깊은 지식이 한두개만 있는게 나은지는 평생을 살아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여러개 있는 얕은 지식이니 잘 써먹고 살아야지 싶고. 구직 활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려고 마음먹은 6월이었는데, 시작도 하기전에 받은 연락에 일거리가 생겼다. 이래서 구직 활..
누구나 가슴속에 삼천원... 아니, 울타리쯤은 가지고 있는데 살아오면서의 학습의 결과, 보통의 남들 경우 이 울타리가 겹겹이 쌓여있더라. 인간 관계에 섬세한 사람들은 매우 세분화되어서 촘촘하게, 그런게 아니어도 적어도 서너개쯤은. 문제는 인간 불신에 사로잡힌 나는 울타리가 딱 두개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문제가 아닌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문제일거다. 나 너 사람. 요렇게 세개. 나의 울타리에는 오직 나뿐이고, 너의 울타리에는 몇몇의 너뿐이며, 사람의 울타리에는 내가 '굳이' 사랑할 필요없는 기타 등등일테다. 얼마나 심플하고 좋은데. 나를 자기의 가장 안쪽 울타리에 넣은 지인(울타리를 수십개를 가진!)은 분명 어째서 그 이와 내가 같은 레벨이냐며 화내고 슬퍼할테고, 어떤 이는 알고..
1/4분기 색연필 드로잉 수업이 끝나간다. 뭐라도 하나 꾸준히 하는게 있어야겠다며 취미반으로 시작했는데 다음달부터는 전문반 수업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취미반으로 마저 가을까지 수업 듣느니 11월에 있을 시험을 준비해서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마음을 굳히다가, 집이나 회사에서 먼 곳으로는 약속도 안 잡는 사람인지라 토요일 본 수업이 멀어 거리 하나 때문에 고민 중이다. 하루종일 스캐너 가격을 알아보고 있는 걸 보니 한 80% 정도는 결정이 된 것 같다. 포트폴리오는 한꺼번에 사오십장 작업할때는 재밌게 해놓고, 정작 너댓페이지 추가하는데 지루해져서 진도가 안나간다. 그 와중에는 평일 낮의 특권을 누려야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쉰다고 늦게 일어나면 아침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꼬박꼬박 일찍 ..
꿈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날 밤의 꿈에서는 오른손 검지손톱이 반 정도 찢어졌다. 밤 여덟시쯤이었는데, 네일샵에 전화해서 손톱을 어떻게 처리 할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며 명함을 뒤적거리면서 찾다 깼다. 엄지 발톱의 중간이 반 정도 금이 간 날이었다. 그 다음날 꿈은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남자 둘이 XX카드값 백삼십만원을 갚아야 한다며 돈을 달라고 했고, 나는 내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가 신랑은 핸드폰이 망가져 연락이 안되니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해본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을 티나지 않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션에게 전화를 해 한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지선 언니라는 호칭만 너댓번이 넘게 불러댔다. 돈이 필요해요, 지선언니. 보내 줄 수 있어요? 지선언니. 뭐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이사를 ..
분명한 기억은, 어릴적의 나는 태양같은 아이였다는 것이다. 외향적이고 활기찼으며 모두의 앞에 나서서 지휘하거나 분위기를 띄워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반에 서넛은 있는 그런 아이. 남을 즐겁게 하는 재능은 뛰어나지 않아도 사람을 사랑하는데에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해 온 세상을 사랑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자지러지게 웃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으며, 내 삶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소녀 감성으로 가끔 우울을 안고 지내며 블루니 뭐니하는 말로 나의 우울함을 포장하기도 했으며 비가 오면 학교 복도 창문에 기어올라가 팔이 다 젖도록 비를 반기는 기이한 행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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