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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기억은, 어릴적의 나는 태양같은 아이였다는 것이다. 외향적이고 활기찼으며 모두의 앞에 나서서 지휘하거나 분위기를 띄워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반에 서넛은 있는 그런 아이. 남을 즐겁게 하는 재능은 뛰어나지 않아도 사람을 사랑하는데에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해 온 세상을 사랑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자지러지게 웃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으며, 내 삶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소녀 감성으로 가끔 우울을 안고 지내며 블루니 뭐니하는 말로 나의 우울함을 포장하기도 했으며 비가 오면 학교 복도 창문에 기어올라가 팔이 다 젖도록 비를 반기는 기이한 행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의심치 않았었다. 행복했었을테고 즐거웠을거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었을테니까.
그런데, 요즘들어 심심치 않게 나의 삶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고 있다.
아무도 필요다고 말하던 오만의 시기를 넘어 (오만의 시기라고 이제와서 고백하는 것은, 그때의 건조함과 무심함은 일종의 꾸며놓은 허세였다는 것을 인정한지 얼마 안된 덕분이다) 진정으로 아무런 의문도 없이 썩 괜찮다는 감상만으로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무심하게 살아가는 요즘의 내 모습이야 지나오는 시간들에서 만들어진 것. 여기서 또 한번 그런데, 나의 저 시기를 같이 지내온 후배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왜 지금이 더 낫다, 혹은 지금이 훨씬 더 편해보인다는 평을 들었던 것일까. 나의 자기 방어는 다시 한번 제 진가를 발휘해 예민하고 날카롭지만 남을 찌를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스스로를 찔러대던 본심을 잊고 살게 만들었던가. 과거의 기억이야 자신에게 짜맞춰져 100% 팩트일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의 내가 원하는 삶이 태양같은 삶도 아닌데 왜 태양같던 나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는 걸까. 게다가 왜 나는 한편의 전쟁영화 처럼 치열했던 연애가 끝나고 난 이십대 초반도 아닌 십대 후반부터 나의 이십대가 끔찍할 것을 걱정해 십년을 건너뛰어 서른의 내가 되기를 바랬나.
얼마전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즐거웠던 고등학교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어떠한 과거로도 돌아가기 싫다는 답을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과거로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지나오는 것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답이었는데 그 순간 고등학교때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맙소사, 나는 그때 절대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기억을 지워버리는 자기 방어의 마법을 쓸 이유도 없는데도 ! 오히려 동아리 활동을 하던 토요일은 기억이 선명한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내 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지는 의도치도 않았던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시간의 흐름인가 생각해보면 똑같은 시기에 더 횟수가 적은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게 조금 우스운 것도 같고, 친구들이 가족보다 좋다는 여고생의 시간이었는데도 기억을 떠올리고 끄집어 내어보면 먼저 나오는건 심지어 혼자 혹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 아이와 함께 등에 따뜻한 볕을 쬐며 앉아있던 시간이라 아니 이게 대체 무엇이냐며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는 중. 분명 답을 내지 못할거다(라고 쓰면서 답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애써 모른 척 하는 중) 답을 낸다고 해도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뭐, 뭐 뭐.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그토록 바라던 서른의 시간을 지금 지나고 있는 것도 같다. 자랑인가, 음 자랑인 것 같다. 남들 다 안 부러워하는 자랑.
그런데, 요즘들어 심심치 않게 나의 삶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고 있다.
아무도 필요다고 말하던 오만의 시기를 넘어 (오만의 시기라고 이제와서 고백하는 것은, 그때의 건조함과 무심함은 일종의 꾸며놓은 허세였다는 것을 인정한지 얼마 안된 덕분이다) 진정으로 아무런 의문도 없이 썩 괜찮다는 감상만으로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무심하게 살아가는 요즘의 내 모습이야 지나오는 시간들에서 만들어진 것. 여기서 또 한번 그런데, 나의 저 시기를 같이 지내온 후배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왜 지금이 더 낫다, 혹은 지금이 훨씬 더 편해보인다는 평을 들었던 것일까. 나의 자기 방어는 다시 한번 제 진가를 발휘해 예민하고 날카롭지만 남을 찌를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스스로를 찔러대던 본심을 잊고 살게 만들었던가. 과거의 기억이야 자신에게 짜맞춰져 100% 팩트일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의 내가 원하는 삶이 태양같은 삶도 아닌데 왜 태양같던 나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는 걸까. 게다가 왜 나는 한편의 전쟁영화 처럼 치열했던 연애가 끝나고 난 이십대 초반도 아닌 십대 후반부터 나의 이십대가 끔찍할 것을 걱정해 십년을 건너뛰어 서른의 내가 되기를 바랬나.
얼마전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즐거웠던 고등학교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어떠한 과거로도 돌아가기 싫다는 답을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과거로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지나오는 것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답이었는데 그 순간 고등학교때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맙소사, 나는 그때 절대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기억을 지워버리는 자기 방어의 마법을 쓸 이유도 없는데도 ! 오히려 동아리 활동을 하던 토요일은 기억이 선명한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시간이 내 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지는 의도치도 않았던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시간의 흐름인가 생각해보면 똑같은 시기에 더 횟수가 적은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게 조금 우스운 것도 같고, 친구들이 가족보다 좋다는 여고생의 시간이었는데도 기억을 떠올리고 끄집어 내어보면 먼저 나오는건 심지어 혼자 혹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 아이와 함께 등에 따뜻한 볕을 쬐며 앉아있던 시간이라 아니 이게 대체 무엇이냐며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는 중. 분명 답을 내지 못할거다(라고 쓰면서 답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애써 모른 척 하는 중) 답을 낸다고 해도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뭐, 뭐 뭐.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그토록 바라던 서른의 시간을 지금 지나고 있는 것도 같다. 자랑인가, 음 자랑인 것 같다. 남들 다 안 부러워하는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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