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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월

_e 2011. 5. 10. 02:31
1/4분기 색연필 드로잉 수업이 끝나간다. 뭐라도 하나 꾸준히 하는게 있어야겠다며 취미반으로 시작했는데 다음달부터는 전문반 수업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취미반으로 마저 가을까지 수업 듣느니 11월에 있을 시험을 준비해서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마음을 굳히다가, 집이나 회사에서 먼 곳으로는 약속도 안 잡는 사람인지라 토요일 본 수업이 멀어 거리 하나 때문에 고민 중이다. 하루종일 스캐너 가격을 알아보고 있는 걸 보니 한 80% 정도는 결정이 된 것 같다.

포트폴리오는 한꺼번에 사오십장 작업할때는 재밌게 해놓고, 정작 너댓페이지 추가하는데 지루해져서 진도가 안나간다. 그 와중에는 평일 낮의 특권을 누려야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쉰다고 늦게 일어나면 아침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꼬박꼬박 일찍 일어나려고 한다는 얘기에 일 중독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나는 그저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을 뿐이고, 남이 내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면 화가 나니까 당연히 내가 내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싫은 것 뿐인데 이걸 아무리 설명해도 좀 쉬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와서 설명하기를 그만뒀다.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기'가 한때의 목표였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목표는 역시 일찌감치 포기하고 속 편히 아무거라도 하면서 지내는 게 낫다는 깨달음도 요 근래에 확실해졌고.

색연필 과제와 포트폴리오 작업 중에는 오래 된 영화들을 틀어둔다. 고전까지는 아니고 어릴적에 봤거나 보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마침 IPTV에서 무료로 다시 보기가 가능한 것들을 고른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콰이어트 룸에 어서오세요 같은 영화를 거실에 앉아 리모콘 만으로 골라 볼 수 있는 세상이 올 줄 주말의 영화를 챙겨보던 꼬꼬마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몇번 시도하다 다 보지 못했던 판의 미로도 끝까지 다 봤다. 예전에 봤었으면 한동안 쓰러진 오필리아의 눈 감은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렸겠지. 빅피쉬의 수선화로 가득찬 앞마당이나 신발들이 걸려있던 마을 입구의 빨랫줄은 다시 보기의 베스트 샷 중 하나 둘.

네일도 정액권을 끊었다. 4월이 끝날 무렵 네일샵 언니가 마무리를 하며 말했다. 손톱에 벚꽃이 피었네요. 자화자찬인 것 같긴 하지만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쏟아지는 비에 지던 벚꽃이 내 손끝에 내려 앉았다. 그렇게 사월을 보내고 나니 벌써 오월. 어이쿠.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뭇가지에서 얼어붙어 떨어지는 작은 새도 스스로를 동정하진 않는다. / D.H. 로렌스 - 그래서 내가 들짐승을 사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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