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걸려 콜록거리는 j씨가 따끈한 차 한잔을 부탁해 물을 올렸다. 잠들기 바로 전이라 안경도 벗어 앞에 뵈는 것도 없겠다, 졸린 눈에 더 가물해져 티백을 넣고 컵에 물을 따르면서 손에도 조로록 같이 따랐다. 팔팔 끓기전이라 다행이었지만 한참을 흐르는 찬물에 대고 있었는데도 잠깐 물에서 손을 떼면 속에서 화기가 올라와서 끙끙거리며 뱅글 돌았다. 너무 찬 기운이 바로 닿지 않게 둘둘 둘러싼 아이스팩을 대고서야 겨우 잠들다가, 어느샌가 녹으면 그게 또 아프다고 끙끙내는 바람에 아픈 나는 오히려 잠깐씩이라도 잤는데 j씨는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한 월요일. 그리하야, 올해는 주구장창 말 그대로 '손발이 고생'이다. 이제서야 붓기 다 빠진 엄지발가락도 구부리러 병원에 가긴 해야하는데. 쉘 케이스를 공장이라도 된 ..
결국 비슷한 것들만이 남는 것 같다. 비슷하지 않은 것과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겠지만 같은 양의 사랑을 양쪽에 준다고 하면 맞추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사랑이 분명 있을테니, 마지막까지 남는 건 처음부터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큰 것들이 축을 뒤틀고 사소한 것들이 틈을 만드는 것들이 간간히 눈 앞에 나타날때면 무감각하게 지켜보다 결국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애꿎은 손바닥만 쥐었다 핀다. 시뻘개지는 얼굴로 한참을 투덜대고 나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강처럼 꽃처럼은 아니어도 메마른 가슴은 내 목이 너무 마르니, 미움은 없이 살아야겠다. 애써 미움을 보지 않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미움이 생기지 않을 여유로운 마음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 받지 않고 마이웨이인 것이 나이 먹고..
상이언니 신보 (상이오빠는 꽃청춘이후로 나에게 상이언니가 되었다) 날 위로하려거든 그냥 내버려두라니, 가끔 그럴때가 있지. 암. 그민페 토요일 최종 라인업이 떴다. 타임라인이 뜨기 전 기대도 하지 못하게 헤드라이너로 소라언니와 스윗소로우가 꽝꽝 박혀있다. 둘 중 하나를 고르시라고 하면 나는, 나는, 나는. 일요일 헤드라이너는 적아저씨랑 메이트 언니네 등등 인데, 어차피 월요일 출근 때문에 포기하고 집에 갔을거라고 생각하고 애써 들여다 보지 않고 있다. 괜찮아, 나에겐 불과 다음주로 다가온 규호언니 공연이 있으니까. 병원에 갔더니 의사 아저씨가 '또 오셨네요'하고 인사를 한다. 마치 단골이 된 식당에 들어서는 기분으로 '그러게요, 또 왔네요.' 하고 앉아 메뉴를 시키듯 속이 아프다고 설명을 하고 처방전을 ..
김크림도 드디어 뽀뽀하는 법을 배웠다. 첫 뽀뽀는 익숙치 않은 탓에 이와 이가 딱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주말 내내 손에서 바늘과 천을 떼지 않고 지냈으면서도 갑자기 뜨개질이 하고 싶어졌다. 뜨개질 바늘을 한번 잡아본 적도 없으면서 코바늘뜨기니 대바늘뜨기니를 검색한다. 잔병치레야 잦지만 요 몇 일 사이처럼 몸 상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안 좋아지면 안 그래도 없는 마음의 여유가 가물어져 다른 이의 행복도, 다른이의 불행도, 모든 것에 감흥이 없어지는 상태가 된다. 고양이 두마리를 옆에 두고 자그마한 TV 소리가 들리는 거실에서 얌전히 바느질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오후. 손이 계속 차다.
m과 공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내 돈이 아니라 우리의 돈이고, 내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라 가고 싶은 공연을 모두 가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모든 공연을 꼭 챙겨가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이라거나, 가끔은 공연장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어디에서든 둘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에 만족하게 되는 결혼 생활이랄까. 추석 맞이 가족 행사로 해적을 보았다. 매번 만날때마다 어디갈지 헤매이는 과정에서 엄마와 부딪히는 것 같아 이번에는 점심과 영화까지 모두 미리미리 예약. 인투더스톰을 볼까 했는데 2D는 시간이 안 맞고 4DX는 바람과 진동까진 괜찮은데 물이 나온다길래 완벽하게 포기했다. 해적은 감독이 고래덕후인지 고래에 CG를 몰아주고 나머지 CG는 엉성했지만 CG같은거 따지려면..
얼마 전 주문한 민들레차, 연잎차, 페퍼민트티(박하차라고 써야할 것 같은 운율인데)를 담아온 걸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녹차를 좋아하지만 몸이 찬 편이니 자주 마시지 않으려고 하는 편. 커피를 끊고 나니 마실 차의 종류들이 많아져서 좋다. 세안 직후 바르는 스킨으로 발효화장품을 들여놨더니 명현현상 때문에 잔 트러블이 올라왔다. 적응이 되면 괜찮을거라고 일주일에서 열흘정도까지는 버텨보았는데 덕분에 잔 트러블이 아니라 아예 피부가 뒤집혔다. 어이고. 도저히 안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잔뜩 남은 스킨을 변기에 흘려보내고 미니멈 라인 7일 키트를 꺼냈다. 흡수도 잘 안되서 무거운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수분이 날아간듯 건조한 느낌도 들게 해주는 라인이지만 트러블엔 이만한게 없다. 그러고보니 예전..
캄캄한 세상, 작은 목소리로. 노래할게, 또 걸어갈게 이제 - 권영찬을 듣고 있다. 눈꽃씨가 애정하는 뮤지션인데 새 앨범이 나왔길래. 사실 먼저번 앨범에서는 그렇게 많은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은 왜 이리 좋은가.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노래하며 연주하는 이미지의 노래들이 실렸다. 한동안 많이 듣겠구나. 위장이 또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어이고 지겨워. 찬물도 끊고, 커피도 끊고, 술도 안 마시는 와중에 뭐가 문제인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출근하면서 활동을 위한 기력을 채우려고 배부른 것 이상을 먹은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이야 생각나지만 확실하지가 않다. 밤마다 따끈한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잠이 들면 하루 중에 아침 정도는 속이 편하다. 병원가도 별..
퇴근 길엔 시장쪽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귀찮아 지나는 길에 있는 슈퍼에서 풋사과 두 알을 샀다. 집에 들어가서는 개운하게 씻고 나와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문질러 씻고 조각내 접시에 담고는 조르륵 거실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동안 열심히 복숭아를 먹었었는데, 많이 보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과도 달달한 것이 곧 여름이 끝나려는 모양이다. 가을이 오고, 네번째 결혼 기념일을 보내고, 겨울이 오면 올해도 끝. 불과 1년 전에 만들기 시작한 css를 정리하려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온다. 급하게 추가 될 때마다 더해진 소스들이 어지러움을 한결 더한다. 예전에 작업한 것들을 보면서 부끄러워 할 만큼 더 늘어난 것을 자랑스러워야 하는가를 잠시 고민하다 그럴리가 없이 부끄러움만 더해진다. 시간이 지나는 것..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덕질을 반복한다. 인디쪽 덕질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이돌 덕질이 좀 뜸해진다 싶었는데 뜸해지긴 뭘. SM콘서트에 다녀왔다. 5시간을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공연에 위를 올려다보다 목에 담이 걸릴뻔 함. 매일 같이 소극장 공연에서 전방 10m 안쪽의 오빠만 보다가 무려 월드컵 경기장에서 면봉오빠를 한마리의 새우젓이 되어 보고 있자니 기분은 좀 이상했다. 그래도 한 몇 분 정도는 오빠가 면봉이 아니었으니 그걸로 뭐 괜찮고, 내 인생의 유일한 아이돌 콘서트이지 싶긴 한데 그래도 옛오빠와 현오빠 기타 등등을 모두 보고 온걸로 만족스럽다. 그리고 새 오빠는 매우 예쁨. 지덕체 중에 제일 가지고 싶은건 '지' 이지만 동음이의어 '덕'이 제일 많은 나라서 주말에도 덕덕하게 지냈다는 그런 ..
몰린으로 티저라니. 네, 가야죠. 끙끙. 규호 언니 9월 소극장 공연도 티켓팅 해야겠네. 7월에 알바를 해두길 잘했지싶다. 올해는 남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 덕력 충만하게 보내고 있어 흡족하다. 주님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하시길 원하신다는 아침 큐티에, 굳이 남을 정죄하려 들던 나를 떠올렸다. 예민한 성격과는 달리 대인 관계에서는 무심해 애정이 없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만큼 상대방을 방목하는 편인 나는 상대를 신경쓰지 않을 때 두 세가지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애정을 기반으로 그 사람이 무얼해도 괜찮은 것, 다른 하나는 무관심을 가장한 미움으로 그 사람이 무얼해도 상관없는 것, 나머지 하나는 정확하게 무관심으로 나에게 영향만 없다면 그 사람을 인식도 잘 못하는 것. 문제는 무관심을 가장한 미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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