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치고 9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내어놓는 소리가 그득 들어차 귓가에 왕왕거린다. 급하게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알콜 냄새가 나는 말들이 오고 가고, 점점 커지는 목소리는 핸드폰 넘어 사라지기가 무섭게 다시 몸집을 키워 다시 나타난다. 들고 있는 핸드폰에 얼굴을 묻고 있자면 위쪽 시야에 들어오는 다리들이 한참을 서다 사라졌다, 다른 다리로 채워지며 지하철이 달린다. 늦은 밤에도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 내리는 우리 동네 역에는 꼭 하나둘 기둥에, 벽에 기대어 있는 이들이 있다. 커다란 아저씨가 이마를 대고 비스듬히 서 있는 기둥을 조심스레 뱅 돌아 사람이 가득한 계단을 밟는다. 썰물과 밀물에 움직이는 부표처럼..
감기는 여전히 떨어질 줄을 모르고, 연이은 야근과 주말 출근에 어깨가 뻐근해 오지만, 이제야 봄은 봄이구나 한다. 아침 출근길에 드디어 패딩코트를 벗고 모직코트를 챙겨 입었고, 날이 따뜻해졌네요 - 라고 하니 그래도 네 옷은 겨울옷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봄에 내리는 비가 아니라 봄을 부르는 비인 봄비가 오고 나니 정말 봄인가 싶다. 황사는 덤. 모래폭풍이라니 강렬하구나. 직역의 힘. 모여 주고받는 마음들도 합이 맞아야 지치지 않는다. 서로 엇나가는 것을 들여다보며 한 발 정도를 슬그머니 빼고 물러나 있다. 나는 이미 지쳤고, 놓아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어쩌면 끝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지친 마음은 약간씩 회복되다가도 다시 지치며 물결을 그리겠지. 물결의 끝은 어디..
변해가는 혹은 공유한 시간들로 묶여있지만 점점 느슨해 있는 관계들을 보면서 같은 속도로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같은 시기에 취업을 할 때 까지는 비슷한 속도의 걸음이었는데 각자의 사정과 속도가 달라지면서 누군가는 저만큼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쉬어가며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길의 사람들이 보이고, 몇 없더라도 나와 속도가 맞는 사람들과 걷다 보면 거리가 생긴 예전 인연보다 지금의 인연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속도와는 상관없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 속도에서 보이는 풍경 이외의 것들을 나누는 사이는 각자의 속도가 어떻든, 마주 보고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나눌 수 있지만 자신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은게 사람의 습성이니 ..
감기가 또 왔다. 이쯤 되니 지긋지긋한 올겨울의 동반자. 3월인데 어째서 봄이 아닌가 하지만 이곳은 내내 겨울이다. 퇴근길 지하철에는 다들 하늘하늘한 봄옷인데 내 옷만 두툼하니 볼록 볼록하다. 어릴 적부터 멋 내기보다는 생존에 좀 더 치중하며 살았으니 부끄럽지는 않고, 지하철이 달리는 도중에만 덥다. 그래도 땀을 흘리는 게 낫지 덜덜 떨며 다녀봐야 감기만 길어질 뿐. 콧물이 주룩주룩 내리고, 휴지로는 코밑이 헐 테니 하루에 한 장씩 손수건을 쓴다. 나의 이 로하스 한 콧물 닦기에도 불구하고 코밑에 뾰루지가 나서 마냥 아프고 아프지만, 오자마자 병원에 들른 덕분에 먼젓번보다 짧게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 와중에 코감기 약을 먹자면 입이 마른다. 덕분에 하루에 마시는 물만 2리터가 넘지만 물을 마시고..
남에게 선을 행하라는 말을 아침 QT에 보고 꽝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그러겠노라 다짐했지만, 출근하자마자 휘몰아치는 것들에 또 갈 곳을 잃은 나의 선이 하릴없이 맴돈다. 불만이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늘어놓아 봐야 무엇하겠나. 마음을 가다듬고 소스나 열심히 뜯어보는 수밖에. 오늘의 고비가 이주의 고비가 되고, 이달의 고비가 되었지만 그래도 하릴없이 맴도는 그놈의 선을 붙잡고 끌어다 단단히 잡고 있어봐야겠다. 그런 의미로 내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해보자. 사랑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보다 앞에 두는 것이라고 올라프가 말했단다. 내가 오랫동안 열심히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말이 바로 그거였다. 저렇게 한 문장이면 될 것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먼저인 것, 내가 원하는 것이 ..
여름이 오기전에 규호 언니도 오시고, 소라 언니도 오시고, 승환옹도 오시니 5-6월 여행길에는 귀가 풍성하겠다. 많이 걷고, 많이 보면서, 많이 들어야지. 많이 만지고, 많이 읽고, 많이 만드는 것은 덧붙여보는 희망사항. 뷰민라에 가고 싶다. 특히 2주차. 술탄의 춤사위에 같이 묻히고 싶고, 윤아 누님도 또 뵙고 싶다. 하지만 다른 할 것들이 많이 기다리니까 꾹 참고 그민페를 가는걸로 다시 한번 다짐. 이랬는데 규호언니 나오신다 하면 쪼오금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올 겨울은 더운 나라 타령을 덜 하고 지나갔네. 갈 수 없다는게 확정되고 나면 하고 싶다는 말버릇조차 숨어버린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집고 나와야할텐데 - 라고 생각하기엔 나이가 먹었다.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 ..
ck가 로또에 당첨되면 내게 집을 사준다고 했다. 로또가 당첨돼도 집 사줄 만큼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럼 할부로 사준다고 했(...) 마음이 갸륵해서 기록을 남겨둔다. ck의 로또가 꼭 당첨되기를. 그리고 매우 바쁘다. 바쁘다 바빠. 할 일이 산더미. 최후의 최후까지 해야 할 것을 미룬 자의 모양새는 항상 이런 식이다. 하지만 하기 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할 것이니까 더 미루게 된달까. 부디 이번 주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오늘이 최대 고비다. 아침부터 총총거리고 돌아다니고, 그새 넘어질 뻔하고,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새로 작성하면서 늘어나는 항목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오향초가 나의 위를 지켜주겠지. 자정이 넘어 일을 끝내고 자면서도 굳이 한 포 쭉 빨아먹고 잔..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이 쉽지 않다는 m에게, 쉬우면 다들 행복해지고, 그러면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결국 투덜거리게 될 거라고 말했다. 행복을 자기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낙천적인 사람이야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언제나 행복할 테고, 보통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낫거나 적어도 남들만큼은 가져야 행복할 테니까. 보통의 사람들의 행복은 모두가 행복해지면 똑같아지니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고, 그러니 쉬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낙천적인 사람이 되거나 어려운 행복을 위해 남들보다 노력해서 남들보다 행복한 게 맞을 것 같다. 코튼빌 댓글 이벤트 또 당첨됐다. 코튼빌은 나를 사랑하는가봉가. 나도 코튼빌이 좋음. 이번에는 댓글 이벤트에 쓴 고대로 홈웨어를 꼭 만들어서 이용 후기를 올..
낯선 번호에 후후가 복지관에서 도움을 달라는 전화가 왔다며 알려준다. 일단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고, 내 번호를 어디서 났는지 물어봤다. 개인정보가 아무리 너덜너덜하게 온 사방에 뜯기고 노출됐다지만 그럼에도 나의 정보를 공공재로 사용하고 싶지 않아 영업 전화들이 오면 제대로 된 답은 받아본 적 없지만, 항상 번호의 출처를 물어왔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답은 시원찮게 0001부터 눌러봐서 받는 번호였다고는 하는데 수천 개가 넘는 번호를 눌러보는 데 얼마나 걸릴까 같은 부수적인 의문은 접어두기로 했고 - 이런저런 설명 한 번도 끊지 않고 다 들었고, 매우 간단한 설명이라 총 통화시간이 46초밖에 안 됐으며, 매우 상냥하게 죄송하지만, 후원할 생각이 없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
벽초지 빛 축제를 보러 가기로 결정 하고 나니 미세 먼지가 몰려오고, 병원에선 편도선염이라며 과로하지 말라고 하고, 점심을 먹고 나니 결국 귀찮기도 해서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다. 자꾸만 편도선 수술 이야기하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수술한 적도 없고 수술할 생각도 없지 말임다. 오전에 잡혀있던 약속도 취소되었고 덕분에 미뤄두고 쌓아뒀던 재단을 해보자며 니트 원단 담겨있는 박스를 들고 나와 재단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드륵드륵 재봉. 세 번째 만들어보니 이제 감이 잡히는지 입을만하다. 미싱을 바꾼 덕인지 바인딩 덕분인지 노루발 덕분인지 모두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더 잘하게 된 걸로 해두자. 튀김류가 먹고 싶단 j씨의 말에 돈까스를 시켜먹는 중에는 ck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계란 30개가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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