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7/8월호를 8월이 되서야 구매했다. 사고나서 정기구독을 하려 했더니, 정기구독의 스타트가 7/8월호라 9월이 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참을 읽지 않고 방치해두다 한시간이 넘게 지하철을 타야하는 스케줄이 생겨 가방에 담았다. 리뷰와 테마에 맞는 아트, 인터뷰와 소설이 주된 내용들이고, 이번호의 인터뷰는 천명관. 고백하자면, 제일 처음 리뷰글이 도무지 읽히지 않아 읽기를 그만둬야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요즘의 문체는 이런것인가 라던가, 나의 독해능력의 상실 같은 것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단 넣고 생각하자며 글자를 뜯어 씹어먹듯 삼키고 다음 리뷰로 넘어가니 다행히 그 리뷰가 나와 안 맞는 문체였더라. 이거랑 비슷한 경우가 예전에 단편집을 읽을때 있었던 것 같은데, 의식적으로 첫번째 글..
십년이 넘도록 함께 하지 않았던 가족 여행에 참여했다. 마트 푸드코트에서 맛 없는 점심을 사먹고, 아빠와 제부가 구운 고기를 먹고, 엄마 아빠와 함께 셋이서 밤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어도 남은 반찬들을 도로 싸들고 돌아왔다. 부부로 지내는 j씨와도 사이는 좋지만 뜨거워 절절 끓게 지내지는 않는 도중이니 가족들과 만나도 별다른게 있을리는 없다. 신나고 깔깔대는 시간이야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여행이었다. 이 '그럭저럭'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날의 소중함이랄까,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가는 그럭저럭한 날의 소소함이랄까. 고삼의 절정에서 나는 엄마와 미친듯이 싸웠는데, 공부에 관한 히스테리 때문도 아니었고 대학에 관한 부담감도 아니었다...
701번 버스에 놓고 내린 지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손을 떠난 지 5 분도 안 돼서 찾지 못할 높은 가능성을 머릿속에 계산하며 카드 정지부터 시작했다. 버리기를 하며 살아야지 마음먹고 떠난 여행에 지갑부터 버리게 될 줄이야 어디 알았나. 제주 시청 앞의 사진관에서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찍고, 제주도 어느 동의 직인이 찍힌 주민등록증 대체 서류를 받았다. 부장님 말씀대로 추억을 만들려고 지갑을 내다 버리고 온 것인지, 지갑에 대한 안타까움은 손톱만큼도 없이 떠올리면 그저 웃기다. 제주도는 잘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다닐 생각은 말아야 하는 곳인듯하다. 차가 없이 가려면 욕심 없이 이동거리 한 시간 이내로만, 하루에 이동은 최대 2번 이내로. 날씨도 온통 알 수가 없이 비를 뿌리다 해를 내고, 숨이..
지난주 내내 조퇴+이틀을 내리 쉰 게 민망하고, 8월에도 한달 쉬니까 휴가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 그래도 다녀오라는 말씀에 또 냉큼 날을 받았다. 3일이나 주는 휴가에 이번에 새로 생긴 트롤리를 타고 서울 투어를 같이 할 계획이었던 쏠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주 가자' 사실 어제 회식에 이야기가 살짝 비쳐, 잠이 덜 깨 거실 쇼파 누워 선풍기를 쐬는 j씨에게 '나 제주도 갈지도 몰라'하고 나온 출근길이었다. 당장 일주일도 남지 않은 날의 비행기표를 끊고, 성수기라 자리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게스트 하우스들에 전화를 돌린다. 제주는 고등학교 수학 여행이 전부라 그때의 기억이라곤 밤에 모두 모여봤던 가을 동화 마지막회와 다리 한쪽에 몸통이 들어갈 것 같던 힙합바지와 머리에 씌여져 있던 벙거지, 그리고..
얼마 전에는 신발장 정리를 했다. 정리의 기본인 '신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죄다 꺼내기 시작했다. 비싼 신발이 아니니 한 철 신고 넣어두고, 해가 바뀌면 또 저렴한 새 신발을 사는 걸 거듭했더니 몇 년 동안 묵혀 둔 신발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는 신발들도, 낡고 해졌지만 신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던 신발들도 모두 커다란 봉지에 담겼다. 미련이라는 것은 참으로 미련하게도 -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필요하지 않는 것들에 기대를 걸고, 정작 필요한 것들을 넣을 공간은 주지 않아 자주 손이 가는 것들은 겹겹이 쌓아 두어야 해서 매번 번거로웠다. 버릴 것들은 적당히 버리고 미련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고작 신발장 정리 만으로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쏟아져 나와 얼마나 더 버려야 하는가를..
아침 버스와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는 마스크를 낀 직원들이 이마 온도를 잰다. 매일 아침 꼬박꼬박 36.2도, 무사통과다. 밤중에 열이 올라 얼굴이 시뻘겋던 아픈 날에도 아침이면 열이 내린 희여멀건한 얼굴로 일어나지던 평소의 것이 몸에 밴 덕분인가 싶다. 항상 그랬다. 마음이 안 좋아 잠을 못 이루던 날도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이불 속에서 얌전히 있자면 결국 잠이 들었고, 몸이 안 좋아 비틀거리는 날에는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웬만한 것들은 괜찮아져 있었다. 비록 일어난 지 십 분만에 다시 그걸로 고민할지언정 전 날의 것보다 부피는 줄어있었고, 그때 그 순간이 아니어서 조금 더 나았다. 너무 아픈 날에는 떨어지지 않는 열에 일어나질 못했지만, 그런 날은 몇 없었다...
논객이니 뭐니 하는 단어도 간지러워 그저 글쟁이라고 부르려는 어떤 이의 데이트 폭력에 관한 글이 한참 이슈인 모양.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다른 정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폭력이 있었다'더라. 자신의 아픔은 언제나 가장 크고, 자신의 잘못은 작게 느껴지는 사람의 본능상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확실한 폭력은 행사된 듯하다. 어느 누군가가 '진보 논객이라는 이유로 더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했다지만, 자신이 쓴 글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던 사람이 자신의 폭력으로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게다가, 그 글쟁이 노릇으로 유명세도 치렀고, 돈도 벌었는데 덕분에 잘못도 잘 알려지는 것뿐이지, 유명세로 인한 이익은 옳고 손해는 그르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
2015/06/19 10:14 여느 날처럼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채우며 서있는데, 어디선가 시작 된 커피 향기가 떠나질 않는다. 아, 커피 마시고 싶다. 습관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안 마신지 몇달째인 커피인데도 드문드문 생각이 난다. 작은 것들이 모여 생을 이룬다. 그러다 갑자기, 작년과 제작년 이맘때쯤의 나를 떠올렸다. 기록이 있다는 것은 이럴때 좋다. 어쩌면 낯 부끄러울지도 모르는 기록들을 뒤적인다. 2014/06/19 17:26 인터넷 댓글들을 보다 생각난건데, 왜 종종 유명인에 관련된 기사 댓글에 'XX야 꼬꼬마였던 네가 잘 되는걸 보니 좋다'같은 서신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걸까. 그 유명인이 그걸 볼거라고 생각하는걸까,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그 유명인과 연관있다는 것을 보고 부러워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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