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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_e 2015. 7. 13. 16:58

얼마 전에는 신발장 정리를 했다. 정리의 기본인 '신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죄다 꺼내기 시작했다. 비싼 신발이 아니니 한 철 신고 넣어두고, 해가 바뀌면 또 저렴한 새 신발을 사는 걸 거듭했더니 몇 년 동안 묵혀 둔 신발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는 신발들도, 낡고 해졌지만 신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던 신발들도 모두 커다란 봉지에 담겼다. 미련이라는 것은 참으로 미련하게도 -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필요하지 않는 것들에 기대를 걸고, 정작 필요한 것들을 넣을 공간은 주지 않아 자주 손이 가는 것들은 겹겹이 쌓아 두어야 해서 매번 번거로웠다. 버릴 것들은 적당히 버리고 미련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고작 신발장 정리 만으로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쏟아져 나와 얼마나 더 버려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 며칠 뒤의 옷장 정리에서는 '입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모두 버리는 데 실패했다. 90%의 확률로 입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몇몇은 남겨두었다. 죄다 버렸으니 이건 남겨둬도 괜찮지 않겠나 생각했다. 몇 달 뒤에 다시 시도하면 버릴 수 있을까. 버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지 너무 한 번에 몰아서 해치우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덤으로 배웠다.

괜찮으냐며, 좀 더 쉬는 게 좋지 않겠냐는 부장님의 메시지에 뻔뻔하게 그래도 되느냐며 죄송하다고 답을 보냈다. 한 여름의 온찜질로도 가라앉지 않던 위경련으로 시작된 탈은 장염으로 마무리되었고, 차라리 속이 비면 더 편한데도 그래도 살겠다며 죽을 먹다 보니 좀 더 '맛'이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며 식탐이 늘었다. 주 5일 근무에 주 2.5일을 쉬고 돌아오니 벌써 금요일이었고, 하루 종일 포카리나 마시다 집으로 돌아오니 한 주가 끝이 났다. 이천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있느냐고 물었고, 동네 병원에서는 먼저 병원에선 열이 난다는 이야기가 없었냐고 물었다. 둘 다 없었다 하니 그저 약 먹고 죽 먹고 쉬라는 말뿐. 사실 저 세 가지면 어디 가 아프던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이지만, 아플 때만큼은 말을 매우 잘 듣는 모범 환자는 죽과 약을 열심히 먹고 드디어 어제부터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만세. 한동안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오래 전 커피도 끊고 탄산수도 끊고 밀가루도 안 좋아하는데 더 뭘 조심해야 할지는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생각 기차에서 '사실'과 '의견' 박스가 무너져 안의 것들이 섞이니 '이 둘은 비슷한 것'이라며 대충 주워 담는 빙봉을 보며 j씨와 둘이 빵 터졌다. 엔딩크레딧의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 내내 '빙봉 빙봉'을 둘이 흥얼거리고 있으니 나름 추천 영화. 픽사는 디즈니를 만나서 돈이 많아지니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흥얼거리고 있다. '빙봉 빙봉'

아마 대체재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쪽에서 받은 상처는 클 테고,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웃거리다 다시 상처받으면서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몇 번 하고 나니 나를 찾기 시작했겠지. 나에게는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 적어도 그런 식으로 앞뒤 원인 결과 아무것도 없이 막무가내로 오는 '말'들은 없을 테니까. 그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상처 모르는 것도 아니라 최대한의 친절과 애정으로 답하고 있는데 이게 잦아지니 살짝 힘이 든다. 나의 성정은 그다지 넓고 깊지 않아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기도 모자라 홀로 온전하기만을 바라는데 친절을 잔뜩 들고 와 안겨주고 옆에 쌓아주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면, 내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니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도 중심을 못 잡고 어딘가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마 나는 평생을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살겠노라 죄다 버리기 시작했는데 좁디좁은 나의 집 안에 손님이 들어와 사랑을 주고 친절함을 주고 선물을 건내면서 몇 날 며칠을 집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저 밖의 울타리에는 얼마든지 당신과 당신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곳이라면 얼마든지 우리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데 눕자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는 이 좁은 집에 왜 굳이. 결국 티는 내지 못하겠지만, 이것도 다 내가 오덕만 있고 다른 덕이 없어 그런 것이겠지만 여전히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이야 흐르겠지. 깊게 생각하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스트레스가 느껴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있자면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 이것 또한 괜찮다.

아프고 바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콘서트가 이번 주. 그 민폐 알럽 티켓도 공지가 떴는데 올해는 큰 것 말고 작은 공연들이나 간간이 다닐까 한다. 3주만 꽉 채우면 쉬는 8월도 오니 그전까지는 튼튼한 몸을 만들어야 하고, 마음도 속도 비우고 튼튼한 속도 만들어야 좀 신나게 놀지.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 단단하길래 피가 나올 때까지 쥐어 짜낸 왼쪽 턱이 아프다. 비는 옆으로 내리면서 안경에 흩뿌려댄다. 벌써 초복인데도 두툼한 겨울 이불의 솜을 한 겹 꺼내야겠다. 하기 싫은 일이 눈앞에 있어 요리조리 피하고 있지만 시작해야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싶다. 위가 살살 아프고 나무와 꽃들이 보고 싶은 걸 보니 어지간히 하기 싫어서 일기나 길게 쓰고 있는 듯 하지만 그만,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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