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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방식

_e 2015. 8. 19. 16:50
십년이 넘도록 함께 하지 않았던 가족 여행에 참여했다. 마트 푸드코트에서 맛 없는 점심을 사먹고, 아빠와 제부가 구운 고기를 먹고, 엄마 아빠와 함께 셋이서 밤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어도 남은 반찬들을 도로 싸들고 돌아왔다. 부부로 지내는 j씨와도 사이는 좋지만 뜨거워 절절 끓게 지내지는 않는 도중이니 가족들과 만나도 별다른게 있을리는 없다. 신나고 깔깔대는 시간이야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여행이었다. 이 '그럭저럭'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날의 소중함이랄까,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가는 그럭저럭한 날의 소소함이랄까.

고삼의 절정에서 나는 엄마와 미친듯이 싸웠는데, 공부에 관한 히스테리 때문도 아니었고 대학에 관한 부담감도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기숙사로 떠났던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자니 도무지 성격이 맞지 않는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몰아세우고 비난을 하곤 했던것이다. 누군가가 잘못한 것도 없이 아주 작은 것은 커지기 일수였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나에게 상처받은 엄마 역시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며 답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각자의 아픔이 먼저였고, 각자의 말이 먼저였다.

그것이 나아져 선을 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시작한 것은 내가 다시 집을 떠나고도 몇 년 후의 이야기.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할테지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이라 서로 사랑할지언정 떨어져 있을때야 괜찮아지는 사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엄마에게 딱히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우리가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을것이다. 그런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테니까, 그러니 굳이 그런 말은 꺼내지 않고 그것보다는 적은 비율인 세월이 흘러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표면에 세운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잘못 때문도 아니다. 그저 이것이 우리의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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