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해 ~ 로 시작하는 j씨의 메신저는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 따위 쓰지 않는 사이다. 뭐해를 머해로 쓰지도 않는다. 어기는 맞춤법이라고는 '-네여' 라던가 '했찌' 정도. 머해 같은 낯 간지러운 말 따위. 아 왔구나 싶어, 무료한 일상에 촉촉한 비를 내릴까 싶어 나는 신났다.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는 소문이 날까 싶었는데 때 마침 I♡GMF 티켓팅이 서버 쪽 문제로 계속해서 안되는 상태라 짜증도 약간 나있어서 망나니 남편을 둔, 의심많고 짜증나는 여자의 유리가면을 쓰고는 '자기 이번엔 또 뭔 일을 친거야? 여자야? 어제도 보냈잖아 대체 얼마?' 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한테 자기야와 미안하다 사랑하다, 이번 한번만 부탁해 등등의 구걸 드립을 치던 놈은 무슨 말만하면 '친구가 중요해 내가..
1. 꼭두새벽에 들어가도 삼십분은 운동을 해야겠다. 잠을 못자는 것도 익숙할 만한데 체력은 다 까먹었는지 늘어난 살들이 무색하게 하루종일 정신을 못차린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색연필 잡고 탁자 앞에 앉아야겠다. 주말엔 오랜만에 앉아 색칠하고 있으니 나는 좋은데 그림이 영 못났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뭐라도 찍어야겠다며 김딧피를 충전해두었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 내 다짐도 내내 그치지 않고 되풀이 된다. 2. 당신과 내가 있는 풍경이 전이나 지금이나 후에도 변함이 없기를 바란다. 특별한 것 없어 떠들썩하지 않고 느슨하며 여유로운 공기가 계속 되길 바란다. 세상에 단 둘만 있어도 지금과 다름이 없기를 바란다. 3. 잠이 영 깨지 않아 반 쯤 감긴 눈으로, 비오는 날씨에 습해 부해진 머리를 산발을 하고 앉아있다..
쪼꼬만 꼬맹이였던 안디는 이만큼이나 자라서 학교에 들어갔고 축구를 좋아한다. j씨는 축구공을 사주고 싶다고 했지만 컴패션은 종이말고는 선물을 보낼수가 없어 마음을 접었다. 지금보다 더 자라면 편지 말고 같이 보내주던 스티커 같은 것들을 유치하다고 싫어하게 되는건 아닐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지난달에 온 편지에는 나에게 무슨 운동을 즐겨 하느냐고 물었지만 숨쉬기 운동이라고 쓸 수 없어 잠깐 고민도 했었다. 온 편지를 읽을땐 이것도 대답해주고 저것도 대답해줘야지 하다 답장을 쓰기 시작하면 그런 것 다 까먹고 내 얘기 하기에 바쁘다. 이제 몇년만 지나면 키도 나보다 커질거고, 지금처럼 가이드에 맞춰서 몇줄만이 아니라 자기 얘기로 꽉 채워 편지도 보내주겠지. 뭐 별다르게 바라는 건 없다. 건강하게만 잘 자라주면 ..
하루에 너댓시간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하거나 출퇴근으로 보내고 있는 요즘. 마시는 홍차의 잔수는 줄어들고 커피의 잔수는 늘어난다. 빨간 포션이라고 부르고 있는 비타민 워터 파워-씨도 하루에 한병씩, 아침의 잠깨우기에 동원된다. 일은 이제 슬슬 적응이 끝났어야 하는데 아직 중간쯤이다. 이러다 정신 차리고 나면 일 끝나있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단 아직은 6월이니 당연히 바쁘다고 생각 중이다. 달이 바뀌면 조금 괜찮아지겠지. 사실, 이러니 저러니 투덜거려도 결국 잘 지낸다. 여유롭지 못하는 삶이어도 못 지낼 이유야 없지. 션이 보낸 다즐링과 아쌈은 병 포장이 귀여워 아직 못 뜯었다. 사스미는 책상에 놓여졌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오후의 티타임이 필요하다. 심혈을 기울여 설탕을 최대한 넣지 않은 인..
일년의 두어번 불면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는 내가 (한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새벽 네시에 잠을 깨야 했던건, 24시간 틀어두는 침대쪽의 모기약도 소용없이 물린 여섯개의 붉은 자국때문이었다. 남들 한번 물릴때 최대 열번도 물릴 수 있는 체질은 아무리 고된 하루에 지쳐 잠들었어도 한방 물리고 나면 소머즈 귀를 만들어준다. 보통은 잠에 취해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을 택하는데, 피곤에 비례해 잠투정도 늘어나는 이유로 온갖 짜증을 다 내며 꿈틀대고 있자니 j씨가 척척 에어컨을 틀고 모기약을 가져다 발라주고 도닥여 재운다. 물론 모기에 물렸다고 네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말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결혼하니 좋냐는 질문을 흔히 받고, 별다를 것 없다는 답을 흔히 했다. 5년..
추운 날에나 내내 가고 싶던 동남아가 요새는 이상하게 날이 더운데도 자꾸만 생각난다. 들이쉬는 공기도 뜨겁고 내리쬐는 햇볕도 뜨거운 차도 옆에서 멍하니 서서, 정자에 길게 코를 올리던 코끼리라던지 현지인 가이드 언니랑 걸었던 밤거리라던지 해질녘에 걸었던 바닷가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가고 싶다- 라고 입버릇도 생겼다. 정작 더운건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피곤한 것도 마찬가지인데도 더운 나라는 갈때 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차곡차곡 쌓인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인상이 험상궂다. 속으로 험한 말을 잔뜩 늘어놓다가 깜짝 놀라 멈춘다. 밖이야 어떻든 안은 평온해야 하는데 밖이나 안이나 꼭 같게 전쟁터 같다. 단 걸 도통 못 먹었는데도 단 게 그렇게 먹고 싶다. 잔뜩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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