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길어질 수록 밤은 짧고, 잠은 줄어든다. 사무실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을 챙겨먹을 때까지 기억은 드문드문 없다. 밝은 새벽도 모자른 잠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핑거 스미스를 다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다 서점에 가서 책의 두께를 보고 놀랐다. 출생의 비밀은 전 세계에서도 통하는 만능 치트키인가 싶어 실망했지만, 영화의 엔딩보다 책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곳에 앉아 있는 모드와 그 모드를 바라보는 수. 내가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 이게 현실이지- 가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살아 남아 생을 이어가는 모드가 (그렇지만 수에게는 목숨을 내어 줄 것 같은 모드가) 좋았다. 그게 삶인가 싶었다. 주말마다 있는 약속에 주말 늦잠도 없이 이르게 일어나 움직이니 피로가 ..
요즘의 화장품은 이니스프리 더미니멈 라인. 들어있는 성분이 순하다는데 성분이니 뭐니 잘 안보는 성격이라 아직 체크를 안해봤다. 스킨은 원래 쓰던게 많이 남아서 그걸 쓴다. 닦아내는 용도라 발효 화장품만 아니면 뭘 써도 별로 관계 없는 것 같다. 비자 스팟 에센스는 큰 트러블 진정용으로 드문드문 쓴다. 더미니멈 라인은 예전부터 피부가 한번씩 훅 뒤집힐때 쓰면 진정효과가 있어 종종 썼는데 리뉴얼이 되어 7일 키트는 없어졌다. 잠깐 쓰긴 그게 제일 좋았건만. 흑흑. 그래도 본품 용량 자체가 적어 한달 안팍이면 다 쓴다고 하니 다 쓸때까지 써보려고 한다. 보습을 포기하고 이것을 선택한 것은 여름이라 좀 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피부가 난리가 났었다는 것. 햇볕 + 새로개시했던 화장품 덕분에 피부가 불긋 ..
어머님께 '체리가 참 싱싱하고 좋다, 이런 맛이었구나' 라는 메시지가 왔다. 시댁에 보낼 것들을 주문한 뒤, 주소를 확인 안하고 시킨 체리가 집으로 오지 않고 속초로 간 모양이다. 맛있게 드시라고, 또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시라고 답을 하고는 어쩌다보니 효도를 했다며 j씨에게 말했더니 바로 '온양에도 보내'라는 답이 왔다. 이런 맛이었구나 라는 문장에 둘 다 아랫배 쪽이 근질 근질 했던 모양이다. 엄마랑 통화를 하며 체리를 보내겠노라 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렇게 체리 귀신이라며, 체리가 생기면 자기는 한 두알 밖에 못먹는다고 투덜거렸다. 이번에 보내는건 엄마도 절반 먹으라고 하고나니 벌써 한 시간을 통화했더라. 나는 통화도 예쁜 말도, 살가운 애교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이제서야 '엄마'인 ..
맛있는 간식은 와구와구 잔뜩 먹을 수 있지만 먹고나면 냥무룩한 것이 기운은 여전히 없는걸로... 힘내라, 김크림! 힘내라, 늙은이! 그나저나 주식캔과 간식캔 어느 것에 섞어줘도 입도 안대던 비오비타를 듬뿍 먹일 수 있다니 로얄캐닌 파우치의 기호성이란 대단하다. 사료는 인도어 7세 이상에서 그냥 인도어로 다시 바뀌었다. 좀 더 살펴봐야지. 건강하게 살자 우리. 포동포동 살찐 김치즈는 매우 튼튼. 그리고 며칠이 지나 좀 기운 좀 차린 김크림이 이러고 자니, 김치즈도 질 수 없다는 듯 거든다. 덕분에 그래 자자,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미리 꺼내 놓은 짙은 파란색 샌들을 신으려다, 가디건이 주황색인 것을 보고 주황색 샌들을 꺼내 신었다. 멋부림도 꾸밈에도 큰 관심은 없지만 가끔은 옷과 양말의 색을, 또 가끔은 옷과 신발의 색을 맞춰 입는다. 7월에도 내놓은 팔이 시려 핫팩을 꺼내 들었지만, 오늘은 주황의 날이다. 주황의 기분으로 지내봐야지. 꽃 길은 사실 함께 걷는 진흙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헛재의 말에 꽃길은 원래 흙길이라고, 곱게 포장된 길엔 꽃이 피지 않는다고 답했다. 많은 이들이 걷고 싶은 그 길은 신발은 더러워지고 가끔은 걸려 넘어질 수도 있지만 꽃과 함께니 행복한 길일뿐, 적은 이들만이 만족하며 지내는 어느 길은 평탄한 포장에 다니기도 쉽고 편하지만 꽃이 없으니 심심하고 지루한 것뿐. 엔씨소프트와 한판 했다..
수국이 가득한 제주에 있는 지인의 인스타를 보며 억새가 가득한 제주에 있을 10월의 나를 상상한다. 조만간 여행 경로를 짜고 숙소를 구하고 항공권을 끊어야겠다. 제주를 갈 돈이면 조금 더 보태 오사카를 다녀오겠다 하며 지내왔는데, 한두 번 가고 나니 더 쉽게 자주 갈 생각이 든다. 공연도 그랬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찾지 않다 어느 날 한번 가기 시작하니 예전보다 좀 더 쉽게 찾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많은 것이 그렇다. 하지 않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가 참 많은데, 한번 시작하고 나면 그 이유들이 줄어들고, 그 이유가 있어도 하게 된다. 아마 하지 않는 나에 대한 변명이 그만큼 많았던 거겠지. 항상 변명 없이 살고 싶은데, 여전히 남은 변명도 많다. 그러니 그 변명들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기로..
이 녀석은 주차장 한 켠에 박스 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사람을 너무 잘 따라서 항상 걱정이 된다. 혹시나 해꼬지 하는 사람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갈까 싶어 야옹 하고 다가오면 일부러 발을 굴러 저리 가라고 하지만 그닥 위협적이지 않는지 아주 조금만 떨어져 말똥말똥 바라본다. 요즘은 저 경차 위가 마음에 들었는지 수시로 올라가 잠을 자곤 하는데 사진을 찍느라 한동안 보고 있자니 바로 내려와 발라당 누워 뒹굴거린다. 너무 그러면 못 써, 해보지만 못 알아 듣는건지, 모르는 체 하는건지.
주말 내내 비가 온다던 일기 예보는 아침에 다시 보니 그새 바뀌어 흐림 구름으로 가득했다. 우산은 챙기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방수 가방에 담았던 것들을 크로스백으로 옮겨 담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한 덕분인지 장마철이라 놀러 가는 사람이 덜한 덕분인지 많이 밀리지 않게 도착해 이른 점심을 먹고 한숨 자라는 말씀에 괜찮다며 산책에 따라나섰다. 산책인지 산행인지 모를 걸음의 끝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바람이 잔뜩 불어오는 그늘에서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뿌연한 물을 들여다보았다. 요즘의 나의 상태는 괜찮지만 괜찮지 않고,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 대체로 괜찮은 상태가 계속되는 와중에 가끔씩 괜찮지 않은 상태가 밀려올 때면 괜찮은 이유를 찾아 금세 괜찮아지고는 하는데, 요 근래 몇 번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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