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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주황

_e 2016. 7. 7. 11:41

어제 미리 꺼내 놓은 짙은 파란색 샌들을 신으려다, 가디건이 주황색인 것을 보고 주황색 샌들을 꺼내 신었다. 멋부림도 꾸밈에도 큰 관심은 없지만 가끔은 옷과 양말의 색을, 또 가끔은 옷과 신발의 색을 맞춰 입는다. 7월에도 내놓은 팔이 시려 핫팩을 꺼내 들었지만, 오늘은 주황의 날이다. 주황의 기분으로 지내봐야지.

꽃 길은 사실 함께 걷는 진흙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헛재의 말에 꽃길은 원래 흙길이라고, 곱게 포장된 길엔 꽃이 피지 않는다고 답했다. 많은 이들이 걷고 싶은 그 길은 신발은 더러워지고 가끔은 걸려 넘어질 수도 있지만 꽃과 함께니 행복한 길일뿐, 적은 이들만이 만족하며 지내는 어느 길은 평탄한 포장에 다니기도 쉽고 편하지만 꽃이 없으니 심심하고 지루한 것뿐.

엔씨소프트와 한판 했다. 아침부터 첫 전화를 나로 받은 상담원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상담원이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니 어쩔 수 없지. A건과 B건에 대해 홈페이지에 문의 글을 남겼지만 5일째가 되도록 답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A건의 메일 도용은 자기네들이 해줄게 없으니 다른 사람의 활동 내역이 메일로 날아오는 게 싫으면 스팸 처리를 하라고 하더라. 상담사분 전화번호 좀 알려주면 아이디로 쓰겠다고 혹시라도 연락이 오거든 스팸처리 하시라고 번호를 따려다 퇴짜 맞았다. 그리고는 오후에는 통화로 해결이 돼서 다행이라는 식의 답변이 왔길래 너희의 프로그래밍 실력과 고객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의 모자람은 충분히 알겠으니 고객센터만이라도 일을 좀 해주면 안 되겠냐고 다시 문의사항 읽어보고 답하라했더니 금세 추가 답변이 달렸다. 그리고 B에 대해 물었는데 B인척 하는 C를 이야기하며 답변을 준비 중이라길래 두 손들었다. 항복이다. 더 이상 시간 들여서 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지 않다. 하긴 모두가 바보인 회산데 그 와중에 고객센터만 멀쩡할 리 없지. 부들부들.

김크림이 기운이 없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그만이라고 서로를 방목하며 지내왔는데, 잘 먹지만 잘 못 싸는 것 같다. 지켜보다 심해지면 병원에 들어 갈 생각으로 저녁 약속들을 죄다 취소했다. 다행히 어제는 조금 나아 보였지만 좀 더 지켜봐야지. 나는 우리 집 고양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 매년 지금보다 딱 일 년씩만 더해서 더 우리와 함께 지내길, 혹시라도 멀리멀리 가게 되거든 아프지 말고 편안히 자다 떠나길. 이 두 가지만 해주면 되는데. 매일의 비실이 그냥 사랑받기 위한 엄살이면 좋겠다. 엄살킹 김크림이면 좋겠다.

다리의 물기를 닦아내는데 샤워부스 안으로 냉큼 들어와 물을 틀길래 무슨 짓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난으로 가득 찬 얼굴로 꽃에 물 준다길래 못 들은 척했더니 한 번 더 꽃에 물을 준다고 거듭 말했지만 역시나 못 들은 척하고 나와 버린다. 아마 더 장난을 칠 거라 피한 건데 욕실에서 나오는 걸 보니 모른체 했던 것이 부질없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꿈속에서 어딘가를 몰래 가다 버스를 타면 행선지가 들킬 텐데 큰일이라며 두 정거장도 못 가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던 j씨와는 여전히 놀리고 놀림당하며 지낸다. 요즘 우리의 유행어는 많은 말의 뒤에 붙이는 '알겠냐'인데, 이건 텍스트 말고 어감을 살린 육성이 제맛이라 표현이 잘 되지 않는 게 아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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