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축제의 하이라이트. 작은 야시장을 서성이다 무대가 마무리 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떠올리면 선명한 그 날 밤의 하늘. 불꽃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카메라를 들이대다 이내 다 그만두고 멍하니 보기만 했다. 커다란 불꽃이 터질때마다 들려오던 사람들의 함성과 짠 내음이 묻어오던 바람의 냄새, 손을 잡고 걷던 어린 연인들과 예쁘게 차려입은 가족들. 작은 화면에 담는다고 담았지만 서 있었던 그 곳과는 전혀 달라서, 언젠가 잊혀질지 모를 그 날을 위해 그저 기록한 것에 의의를 두어야겠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레코드 점 앞을 지나다 '어, 마샤다'하니 눈 한짝만 보이는 사진을 지나가면서 흘낏 보고 용케도 알아본다며 ck가 놀란다. 그러게, 나도 놀랐다. 싱글 나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좌상단에 나를 보고 오빠가 있더라고. 우리 나라 오빠도 아니고 남의 나라 오빠를, 먼 길 떠나 여행지에서 마냥 걸어다니며 휘휘 둘러보다가 처음 본 사진, 심지어 얼굴을 다 가린 사진을 보고도 오빠인 것을 알아채다니. 이것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덕인가 하노라.
선물받은 원단으로 휠프레임 파우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접착솜이 애매하게 남아 사이즈를 억지로 접착솜에 맞췄더니 다 만들었는데 휠 프레임이 들어가서 다른쪽으로 빼꼼 하고 삐져나온다. 게다가 옆 지퍼 마무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 계획을 급히 수정하고 일단 파우치를 마무리했는데 프레임을 넣어야 되는 사이즈로 박아놨으니 위가 너무 넓어 이건 뭐 (...) 어찌할까 고민하다 옆을 살짝 접어보니 귀여워서 사각 파우치로 마저 결정했다. 위에 두가지 원단이 선물 받은 원단, 아래 밝고 화려한 원단은 코튼빌 아르카디아. 옆에는 똑딱이 단추를 달아 접거나 펼 수 있게 하고 싶었지만 생각없이 재단과 재봉을 마친 상태였기때문에 두꺼울데로 두꺼워진 옆면에 단추의 자리는 없어서 그냥 막무가내로 박음질 해버렸다. 손바느질을 하면 손..
느릿느릿 저녁 산책. 여름의 선유도 공원은 처음인데 나무와 풀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푸르른 그곳이 참 걷기 좋았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이도, 만나 마구마구 떠들며 꺄르르 웃어대는 사이도 아니지만 찬찬히 걷고,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고, 찬찬히 맛있는 걸로만 쏙쏙 골라먹는 사이랄까. 해주려다 깜빡하고 결국 못 한 이야기를 적자면 나는- 모든 것에 그 분의 뜻이라며 핑계거리를 찾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어찌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그 분의 뜻일것이고, 다른 길을 준비해 둔 것이라 믿어요. 그러니 더 좋은 길을 향해 걸어갈 준비를 차근차근 천천히 하도록 하자.
계획도 없이 간 제주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일단 하나였다. 오래된 나무들이 가득한 곳. 비자림. 붉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숲길이 나를 기다리는 곳. 커다란 비자나무들을 보며 찬찬히 걷자면 이런 길들이 이어지고, 소원비는 돌이 촘촘히 쌓여있는 길도 돌아 천천히 걸었다. 둘 다 걸음이 빠른 편인데도, 사람이 뒤에 온다 싶으면 먼저 보낸다고 걸음을 멈추고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걷다 멈추고의 반복이었다. 시간을 걸음에 흘려보내는 것이 낯설지도 않고, 부담되지도 않았다. 조급함도 없이 그저 천천히 걸었다. 돌아오는 길 끝 무렵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축축히 젖었지만, 더 젖으면 움직이는게 힘들 것 같아 매점에서 우비도 하나 사입고 990번 버스시간은 이미 지나..
아침부터 부지런히 월정리 해변 가는 길. 701번 버스를 타고 구좌 초등학교에서 내렸다. 그 전 정류장인 월정리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버스에 타고 있던 할아버지는 왜 그리 먼 길을 고르냐며 혀를 차셨고,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내색하지 않고 버스에서 내렸다. 몇 일 있지도 않았건만 제주도의 돌담 길은 우리 동네 빌라 담벼락 같은 느낌이다. 곳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것. 돌 담 넘어 땅에서는 김이 풀풀 올라왔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도 뿌연데, 땅까지 땅 안개인가 싶었지만 일단 걷자. 걷는 것 하나는 참 잘한다. 월정리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둘이 서로 마주보고 허탈하게 웃고는 한바퀴 돌고 나가기로 했다 (...) 제주도의 핫 플레이스라며, 그렇게나 어여쁘다며. 아..
눈꽃씨가 추천해 주고, 검색하면 거기만 나오던 그 집이 문 닫힌 것을 문 앞에서 발견하고 좌절했다. 하루종일 먹은거라곤 아침 일찍의 조식과 요거트와 아이스크림 뿐이었으니까. 배고프면 사나워지는 한마리의 작은 짐승 같은 나는 좌절을 길게 할 수도 없는 상태를 빠르게 판단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해물탕집을 발견하고 전진. 무더웠던 낮보다는 조금 선선해지는 저녁이라 배가 고파도 힘내 걸을만 하다. 에어컨 청소가 내일 이라며 가게 안은 더웠지만 땀 흘려서라도 일단 먹는게 먼저니 자리 잡고 앉았다. 사진을 찍으라며 위에 살아있는 문어도 올려주셨지만, 문어가 전복을 다 가리면 그게 뭐람, 나에게 중요한것은 문어보단 전복. 오랫만에 해물들 두둑히 먹었다. 결국 소화제 사먹은건 당연한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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