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내 홀로 서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인양, 하나의 섬인양, 같은 땅과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도 결국 하나가 아닌 홀로의 각자였다. 하지만 홀로인 우리는 어느샌가 만나 바람에 몸을 휘어 서로에 기대기도 하고, 지나는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숲은 깊고 바다는 넓어 멀리 떨어져 지냈던 우리는 이제서야, 혹은 벌써 각자의 흔적을 지니고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다. 한쪽으로 기운 가지도, 어느 한곳에 흉진 자욱도, 젖어있거나 메말라있는 눈도, 서늘하거나 뜨거운 숨결도, 앉아 쉬어가는 자그만 새들까지도 전부 다르지만 우리가 우리이기에 어느 날에는 비슷한 곳에 자욱을 남기고, 같은 햇살을 맞으며, 비슷한 향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몇일이던, 몇달이던, 몇년이던 ..
1.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 같은 글을 읽고 서로 보여주려 하는 것, 같은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 같은 미래를 이야기 나누는 것. 비록 좋아하는 것들은 여러개지만 그 중 한두개가 꼭 맞아 교집합을 만든다는 것. 그 교집합이 하나 둘 늘어가거나 발견되는 것. 그런 것. 2. 김크림은 김치즈가 안보이면 그렇게 울어대며 김치즈를 찾는다. 찾아대는 시간은 몇시건 상관이 없다. 잠이 막 들려던 두시쯤, 김크림이 애옹거리기 시작했다. 불러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잠깐,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꽥꽥 거려 지친 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들었다. 알고보니 j씨가 문을 닫아놓은 컴퓨터 방 안에 김치즈가 얌전히 있었던 것. 김치즈는 김크림이 저렇게 울고 자기를 찾아도 상관을 안한다. 3. 십이..
달걀 열개, 고기 한근 반, 양파 크게 썰어서 두개, 냉장고에 남아있던 감자 하나, 간장은 많이, 올리고당은 적당히, 물도 적당히 - 자작자작 끓이는 장조림 옆에는 미역국이, 막 끓기 시작한 미역국 옆에는 뽀얗게 김을 올리는 밥통이,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요란스러운 웃음 소리들이, 발 근처에는 가끔씩 냥냥대며 서성이는 크림 치즈가, 안방 침대 머리맡에는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 한상 차려 밥을 먹고 거실 카펫위에 앉아 쿠션에 등을 대고 앉아 새로 산 다이어리를 살펴보았다. j씨는 컴퓨터 앞에서 다닥다닥 하다가는 느릿느릿 침대로 가 누웠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말 오후, j씨가 몸을 조금 뒤로 빼더니 제 팔을 툭툭 친다. 이리 와, 하고.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밖..
가끄-음, 암향에 쌓아 둔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작년 끝날 무렵부터 올 한해 내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도 적어놨다. 정리를 하고,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지낼 방법의 기반을 글로 많이 다진 듯 하다. 게다가,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쉬웠던 예전과는 달리 글이 아닌 말로 표현해서 쉬운것들도 있다는걸 깨닫고 난 다음이라 글이 많이 줄었다. 덕분에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래봐야 결론은 '내가 싫은건 남에게도 하기 싫고, 내가 좋은건 남에게도 오케이'로 귀결되지만 요게요게, 정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일년이나 내내 질질 끌어오며 당신들과 나는 다르니 나를 버려두시오 - 라고 정작 글을 읽지 않을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있었고. 글로 정리한 것의 배 이상으로 메신저 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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