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록을 들였다. 본봉에 맞춰 싱거로 사고 싶었지만 블프 핫딜로 뜬 가격이 배대지 비용까지 따져도 20만원이 안됐기 때문에 부라더로. 때마침 같이 도착한 원단과 오버록을 보며 그렇다면 커버를 만들어야겠다면서 캔버스 원단을 꺼내 같이 재단을 한다. 누빔이나 심지를 대기는 귀찮으니 캔버스로 양면이다. 일러스트가 예뻐서 뭘 해야하나 오백만번 고민했지만, 에코백은 별로 매고 다니지도 않아서 오히려 아까운 느낌이 드니까 매일 보고 매일 쓰는 커버링을 하기로 한다. 예쁘게 모셔두고 나니 뿌듯한데 그 와중에 김치즈가 저 사이를 누비고 다녀서 남색이 흰색이 되고(...) 그래도 커버링 해놔서 다행이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트북 수납용으로 박스 리폼을 한다고 주머니를 만들어 씌워놨는데 만들고 얼마 안되서 김치즈가 바득..
오랜만에 소잉파우치를 만든다. 지퍼형과 롤형. 원래 쓰던 것보다 살짝 사이즈를 키웠다. 미싱 옆에 두거나 재단할 때 옆에 두고 수시로 손이 가는 것 중 하나라 어두운 색 원단이 손때가 덜 보여 좋다. 수납은 원하는대로 할 수 있게 맞춤으로 칸을 나눈다. 미키는 빨강 노랑이 가장 잘 어울리니 색에 맞춰 지퍼도 고르고, 주머니 원단도 고르고. 바이어스는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양이 가장 많은 갈색으로. 하나는 외출용으로 두개를 써도 될 법 하지만, 일단 지퍼형 하나만 쓰기도 하고 롤형은 챙겨두었다.
작은 딤섬 집에서 안쪽 사람이 나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고 피하다가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너무 천천히 넘어가는 바람에 수저를 들고 넘어지는 나도 그걸 보고 있던 j씨도 나오려던 여자도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풀썩. 다시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고는 둘다 웃어버렸다. 넘어지는 나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까지 모두 슬로우 모션이 걸린 듯한 느낌이라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허벅지에 손바닥만하게 설마 했던 멍이 들어있어서 나의 살은 대체 어느 정도 충격이어야 멍이 들지 않는가를 조금 고민하긴 했다. j씨의 말로는 만화에서만 보던 울창한 숲에서 벌목 당하는 커다란 나무 같았다고. 슬로우 슬로우 퀵 퀵 - 하고 중얼거리는, 넘어진 다음 날인 오늘은 저녁에는 뭘 먹어야하나 벌써부터 고민 중인 딴 짓을 덜 한 날..
맨 처음 다투었을 때 원인은 우주였다. 그가 어떤 식으로 우주가 탄생됐는지 설명했을 때 그녀가 받아들이길 거부했던 것이다. 그가 언성을 높이자 그녀는 화를 냈고, 영문을 몰라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화가 났느냐면 당신은 모든 게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하지만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십 억의 인구 중에서 내가 당신을 발견한거야. 내가 다른 사람을 발견했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라면 당신의 그 빌어먹을 수학 따위 참고 들어주지 않을테야!" 그녀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몇 분 동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끝까지 아옹다옹하며 지냈고 끝까지 각방을 쓰지 않았다. 그는 평색 확률을 계산하는 일을 했지만 그녀처럼 확률적으..
코를 훌쩍거리며 출근을 했다. 아침이 문제인가 찬바람이 문제인가. 사무실에 앉아 한두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콧물이 그치지 않는다. 근데 또 다 그치고 나면 코 속이 아픈 것이 그냥 내 코의 문제겠지. 새해 첫 날은 별것 없이 훌쩍 지나고, 새해 둘째 날도 별것 없이 훌쩍 지날 예정이다. 거드는 j씨와 가내수공업 마냥 봉하고 주소를 붙인 연하장을 들고 우체국에 들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건 이렇게 저건 어떻게 할까 생각만 잔뜩 하다 오후를 보내고, 서울 왔다고 늘어난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잠이 들면 또 셋째 날이 올 테다. 훌쩍 훌쩍 보내고 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겠지. 별일 없이 흐르듯 지났으면. 보통의 것이 항상 최선이다. 작년과 재작년의 목표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올해의 목표는 ..
입도 짧고 위도 작은 나는, 식욕만큼은 강해서 한 입을 먹고 만족해도 좋으니 먹어보겠다며 광고에 낚여 결제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한가롭게 식빵을 구워 한쪽/2에 스프레드 하나씩을 바르고 먹기 시작했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지. 제가 경솔했습니다. 단 것도 못 먹으면서 뭘 그렇게 먹겠다며 욕심을 냈을까. 그렇지만 한 입만큼은 셋 다 모두 맛있으니 만족했고, 앞으로는 식빵 한쪽에 세가지를 병아리 눈꼽만큼씩만 발라 먹기로 한다. 올해의 마지막 교훈. 욕심내지 말 것.
깊은 겨울을 보낸다. 찬 바람에 눈 냄새가 났다. 밟히는 눈이 점점 두께를 더했고 사람들은 넘어지지 않으려 종종거리며 걸었다. 새로 산 우산에는 금새 수북히 눈이 쌓였다. 눈싸움을 하러 나온 아이와 아빠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기 전 다 가리지 못한 몸에 쌓인 눈들을 팡팡 털어낸다. 이상하게 바쁜 12월이라 올 해도 다 지났구나에 대한 감상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나쁘지 않은 기분. 차근차근 깊어진다. 올해의 목표는 작년과 같이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다정함은 없이 그저 깊어지기만 했다. 그렇다면 내년의 목표는 아마도 '여전한 깊음'이지 않을까. 아, '평온한 침잠'이 좋겠다. 그거면 충분하겠네.
꿈에서 길에 있는 금괴를 5개나 주웠다. 그 중에 하나가 유난히 반짝 거렸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만 하얀 것이 은이 아니었나 싶다. 다섯개를 주섬주섬 주워 품에 안다가 깨어나서 금괴를 주웠다 하니 j씨가 어디냐며 묻는다. 당연히 기억이 안나 둘이 같이 안타까워 하다 마저 일어나 출근을 했다. 좋은 꿈은 아끼라던데 그러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적어둬야지. 그러고보면 예지몽까지는 아니어도 예감(...)몽은 다들 은근 흔한 것 같던데 - 내 많은 꿈은 대체로 선 현실/후 꿈이었지, 선 꿈/후 현실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할 꿈일 수록 더. 몇 년 전까지만해도 꿈이 이상하면 가슴이 일렁거려 하루종일 멀미를 했는데, 요새는 늦어도 점심을 먹을 무렵이면 내가 이런 상태라 이런 꿈을 꾸었구나 하고 말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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