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열심히 달리기 시작할 때쯤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제일 가지고 싶었던 디자인의 그것은 구하지 못하고 차선책이지만 - 회사에 운동화를 신고 온 것에서부터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스스로 느껴진달까. 이곳에서 3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위를 이기는 것과 넘어지지 않는것. 어여쁜 구두도 고운 코트도 죄다 벗어던졌다. 덕분에 올해는 겨울 시작 전의 요란한 넘어짐 외에는 별다르게 넘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새해에 들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니 박수를 치자. 한 문장의 문자, 두어 마디의 통화만으로 울고 싶어졌다. 울음 대신 짜증을 내뱉었지만 속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죄책감 인질극의 결말은 언제나 그렇다. 황급히 수습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기분이 도통..
서로에게 생일 선물이라며 책을 내밀었다. 곧, 혹은 좀 더 뒤에 떠날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작은 공연들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마파 두부에 고수를 빼달라고 하는 것을 깜빡하고, 카푸치노에 시나몬을 빼달라고 하는 것을 깜빡하기도 했다. 자잘한 이야기들이 들어찼다. 15.라고 제목을 썼다가 고쳐쓴다. 16 - 이라고 쓰는 것이 아직은 익숙치 않다. 다시 한번 일월, 이라고 고쳐쓴다. 이건 여러 장의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 /// galaxy note4, A Better Camera
그때. (작은 냄비에 두 개의 라면을 끓여야 했던 일을 열락悅樂이나 가는귀라 불러도 좋았을 때, 동짓날 아침 미안한 마음에 "난 귀신도 아닌데 팥죽이 싫더라"하거나 "라면국물의 간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은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야"라는 말이나 해야 했을 때, 혹은 당신이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있나봐" 하고 말했을 때,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있어서 출출하고 춥고 더럽다가 금세 더부룩해질 때, 밥상을 밀어두고 그대로 누워 당신에게 이것저것 물을 것도 많았을 때, 그러다 배가 아프고 손이 저리고 얼굴이 창백해질 때, 어린 당신이 서랍에서 바늘을 꺼낼 때, 등을 두드리고 팔을 쓰다듬고 귓불을 꼬집을 때, 맥을 잘못 짚었을 때, "맥박이 흐린데? 심하게 체한 것 같아" 바늘 끝으로 머리를 긁..
카메라 파우치를 새로 만드려고 원단을 뒤지다 청지 발견. 때가 타고 티가 덜 날테니 당첨이다. 진청이라 혹시라도 카메라에 물이라도 들까봐 안하던 선세탁을 하고, 재단을 하고, 수를 놓으려고 보니 아무리 봐도 뒷면이 더 예쁘길래 뒤집어서 수를 놓았다. 부엉이랑 돼지. 서로 연관은 당연히 전혀 없지. 조리개 끈 구멍을 레이스로 했더니 만들기도 쉽고, 보기에도 어여쁘지만 청 원단도 두꺼운 편이고 레이스도 면 레이스라 끈이 꽉 조여지진 않는다. 그래도 힘이 있어서 적당히 조여 놓아도 저 혼자 벌어지진 않으니 괜찮은 걸로. 안쪽은 지그재그의 오버록 버전으로. 귀찮아서 안감 생략. 싱거9960 모델 16번 패턴인데 박음질+지그재그가 한번에 되는 바느질이라 곳곳에 잘 쓰고 있다. 카메라 파우치지만 두툼하게 만들지 않..
해가 바뀌고 몇 분의 시간 차이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실감이 되지 않는 나이인가 싶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새해 첫날을 보냈다. 연휴에 앓아누운 j씨를 침대에 눕혀 이불로 꽁꽁 싸매고 환기를 하고 방을 쓸고 꺼내 녹여둔 사골국을 끓여 기름을 걷어내고 떡과 만두를 넣어 떡국을 만든다. 계란을 휘휘 풀어먹는 것이 내 취향에 가깝지만 새해 다운 일을 하나는 해보자며 지단을 부쳐 썰어 고명으로 얹었다. 올해의 예산도 세웠다. 작년의 결산을 내고, 예외적인 지출들을 체크하고 목표를 정하고 하는 과정은 길지만 지루하진 않다. 거실에서 영화를 보며 쉬는 도중에는 김크림이 새해맞이 큰일을 거하게 치뤄서 덕분에 이불도 싹 다 걷어 세탁기에 넣었다. 탁탁 털어 널고 나니 새해가 뭐 별거 있나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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