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곳은 큰 기업인데,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직원 교육용 팜플렛이 매 주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가 된다. 이번주의 타이틀은 XXX 전쟁에 대비하는 패기- 인가 뭐 그렇다. (기억 용량의 한계는 나에게 쓸모없는 것을 잘 담지 못한다) 패기라고하니 패왕색이나 떠올리는 덕후인 나는 내용으로 적혀있는 것들을 보며 큰 기업에는 도무지 속할 자신이 없구나 하고 고개를 저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하던 시절을 보내고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죽기 살기로 면접을 보고 대기업에 입사했더니 죽기 살기로 일을 하라고 당당히 써 있는 그 문장이라니. 죽기 살기로 공부 해본적도 없고, 죽기 살기로 일을 구해 본적도 없으며, 죽기 살기로 뭔가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서 죽기 살기로 일을 하라는 말에..
밖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부탁한 물건을 가져다 주러 온 ck가 티켓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10년이 뭐야, 이제 조금만 있으면 15년도 되어가는 2003년의 이적 콘서트 티켓. 희미해져가는 잉크와 앞 번호 019에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콘서트 티켓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는 길다. 예전에도 유명했지만 지금보다는 덜 슈퍼스타였던 적아저씨의 단콘은 신나고 즐거웠더랬다. 게스트로 와서 객석을 뛰어 다녔지만 우리쪽으로는 와주지 않았던 진표 아저씨, 적 아저씨가 입고 있던 등에 반짝이는 날개티가 가지고 싶었지만 굿즈로 파는 티는 반짝이지 않아서 사지 못했던 이야기, 공연 전에 갔던 하령회와, 마지막엔 결국 스탠딩이 되었던 공연과, 끝나자마자 출발했는데도 천안에서 차가 끊겨 없는 돈을 모아모아..
스트레스는 접어두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4월에 오키나와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어딘가 놀러가고 싶다는 켄의 이야기에 4월에 가자며 즉석으로 이루어진 여행 계획은 오사카로 가서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갈 것인가 오키니와에서 자연을 즐길 것인가를 고민하다 오키나와로 결정되었다. 이야기가 나온 것이 12월, 항공사별 가격과 시간을 비교해보고 달이 바뀌자 마자 결제를 했다. 봄이 오면 칸사이로 가서 교토를 걸어볼까 했는데 갑작스레 오키나와라니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여행 계획 덕후인 나는 보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오키나와의 지리를 익혔으며 대충의 지도를 덩어리 모양으로 그려 관광 포인트의 대략적인 위치를 찍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언제나 여행을 두번 가는 느낌. 숙소가 무료 취소 및 ..
동물들이 제 영역이 엄청 소중한 것처럼, 나에게도 영역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올겨울에 특히 깨닫고 있다. 겨울에는 점점 두꺼워지는 겉 옷 덕분에 버스나 지하철이 여름보다 빼곡해지는데,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서서 가면 그만이지만 통근 버스는 꼭 앉아 다녀야 하는 시스템이라 매번 남들과는 다른 포인트 출퇴근에 지치고는 한다. 어째서 덩치 큰 사람들은 꼭 내 옆을 노리는 것이며, 나를 밀어내거나 덮어버리는 데에 한점의 거리낌이 없는 것일까. 너무 껴입고 다닌 덕분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을 많이 못 자는 덕분인지 (항상 왼쪽 창가에 앉는 습관도 한 몫해) 한 시간 반의 어깨 싸움을 끝내고 나면 오른팔이 온통 저리고 삐그덕거리는 상태로 버스에서 내리게 되지만 내 자리에서 굳이 몸을 웅크려 피할 생각은 추호도..
겨울 내 책장에 장식되어 있던 어머님께서 보내주셨던 늙은 호박을 올해는 꼭 먹겠다며 호박 스프를 끓인다. 잘게 썰어 말려 호박 고지를 만들어 떡도 하고 무쳐도 먹을까 찹쌀 불려 팥이랑 해서 호박죽을 끓일까도 생각했지만 퇴근 하고 난 뒤의 시간은 한정 되어있고, 며칠에 걸쳐 무언가를 만들기에는 기운이 없으니 제일 간단한 호박 스프로 결정. 한 냄비 가득 끓여 한동안 모았던 죽통들에 차곡차곡 담았다. 매우 간단한 호박스프 끓이는 법 1.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을 적당하게 토막내어 비닐 봉지에 담아 전자렌지에 15분 가량 돌린다. 2. 렌지에 호박이 돌아가는 동안 양파를 대충 썰어 버터에 볶는다. 3. 익은 호박 속을 수저나 칼을 사용해 껍질과 분리한다. 4. 믹서기에 버터에 볶은 양파와 호박, 약간의 우유를 ..
코튼빌 사은품으로 루피망고실과 바늘이 와서 난생 처음으로 뜨개질에 도전했다. 남들 다 학교 다닐 때 한번씩 했다는 것들 중에 해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십자수와 뜨개질. 그 흔한 목도리 한번 뜬 적이 없는데 원형뜨기를 해보겠다며 동영상을 몇번이고 돌려봤다. 코 줄이기와 끝 마무리는 귀찮기도하고 동영상을 봐도 영 감이 안잡혀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제멋대로 마무리. 모자의 행색은 띄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한쪽이 미묘하게 찌그러진다. 머리에 쓰고 있으면 괜찮을거야 (...) 뜨개질도 꽤 재밌어서 사다놓은 실들을 써볼까 생각했지만, 일단 한동안은 자수에 집중하는 걸로하고. 다음 뜨개질 목표는 깔끔한 패턴이 들어있는 핸드워머. (언제 만들지 모른다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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