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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제 영역이 엄청 소중한 것처럼, 나에게도 영역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올겨울에 특히 깨닫고 있다. 겨울에는 점점 두꺼워지는 겉 옷 덕분에 버스나 지하철이 여름보다 빼곡해지는데,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서서 가면 그만이지만 통근 버스는 꼭 앉아 다녀야 하는 시스템이라 매번 남들과는 다른 포인트 출퇴근에 지치고는 한다. 어째서 덩치 큰 사람들은 꼭 내 옆을 노리는 것이며, 나를 밀어내거나 덮어버리는 데에 한점의 거리낌이 없는 것일까. 너무 껴입고 다닌 덕분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을 많이 못 자는 덕분인지 (항상 왼쪽 창가에 앉는 습관도 한 몫해) 한 시간 반의 어깨 싸움을 끝내고 나면 오른팔이 온통 저리고 삐그덕거리는 상태로 버스에서 내리게 되지만 내 자리에서 굳이 몸을 웅크려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점점 벌어지는 그들의 팔다리를 꽁꽁 묶어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거나 하드보드지나 아크릴판을 한 장 들고 다니면서 좌석과 좌석 사이에 끼워 그들과 나를 차단하고 싶다고 지내는 아침과 밤이다.
사무실의 옆자리가 거의 석 달이 넘게 비어있었는데 엊그제 채워졌다. 덕분에 조용했던 자리가 시끌시끌해졌지만 이 빼곡한 사무실에서 그동안 조용히 지낼 수 있던 것이 복이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일을 하며 혼자 흥얼거리는 것은 다른 노래와 섞어 들리지만 이어폰을 끼우는 것으로 들리는 것을 반으로 줄였으니 견딜 만은 하다. 다만, 어째서인지 짐이 엄청 많아 이틀째 되는 오늘 오전부터 슬금슬금 짐들이 내 자리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내 책상에는 짐이 거의 없고 있는 짐조차도 상자에 수납이 되어있어서 책상에 있는 것들은 텀블러와 마우스, 키보드와 충전 중인 핸드폰 정도인데 오전에는 고구마와 사과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절반 정도 넘어와있더니 오후에는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보니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가 떡하니 다 넘어와있다. 아는 사이거나 모르는 사이면 치워달라고 할 텐데 얼굴은 서로 안지 몇 년이 넘었지만 인사는 한 번도 나누지 않은 상대인데 나름의 갑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라 그저 자리를 비우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보지 않으려고 해도 시야에 들어오고 마는 비닐봉지와 내 것이 아닌 키보드가 너무 눈에 거슬려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 나는 당연히 이 공간을 다 쓰지 않을 것이고, 절반가량이나 비어 있지만 그렇다고 남의 것이 나의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을 하는 것은 싫다. 어째서 나의 영역을 심지어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치우려고 노력하려는 제스쳐도 한번 없이 그냥 방치해두는 것인가. 의식하기 전에는 그저 그런 것이지만 의식을 하고 나면 점점 커지는 것들이 있는데 고구마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지금은 그런 존재라 냅다 들어 던져버리고 싶다. 끙끙.
이렇게 쓰고 나니 영역에 대한 강박증은 심리적 영역에 대한 것만 이었는데, 물리적인 영역에까지 번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고칠 생각은 없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째서 내가 고쳐야 해. 밀려오는 위산에 애드시런을 모두 날리고 원타임을 플레이 리스트에 걸었다. 미움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다짐했지만 고작 비닐봉지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미움이 커져간다. 이래서 어디 괜찮을 것인가. 한번 더 끙끙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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