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밤이 붉다. 비가 오기 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이 며칠째 이어지는데 장대비는 아닐 모양인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통증은 적다. 만들어 둔 고래를 주인 품에 들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후텁지근하다고 하기에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불쾌할 정도의 습도라 아가미라도 어디서 사와야 하나 생각했다. 공기가 축축하니 영 무겁다. j씨의 휴가가 시작되었고, 여름 휴가도 연차도 당연히 없는 프리랜서 나부랭이는 막무가내로 우겨 하루의 휴일을 받았다. 별 건 없겠지만 괜찮은 하루를 보내야겠다. 일단은 이 밤을 먼저 보내고.
일러스트페어에서 사온 포스터를 붙여두려고 화장대 옆 작은 벽을 정리한다. 잘고 작은 것들이 어느새 많이도 붙어있어 하나 둘 떼어내고 한 쪽으로 모았다. 작년 한 해가 들어있는 달력, 앙코르 비어 코스터, 오키나와에서 보낸 엽서와 올해 다닌 공연과 전시회의 입장권들,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j씨가 건냈던 네잎클로버와 만들고 받고 사둔 엽서들을 달아둔다. 더 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빼곡히 달아도 자리가 모자르니 좀 더 많이 비워두고 잘 모아두기로 한다. 가끔씩 이런 정리가 필요한 오후가 있다.
와플을 시킬 때는 아이스크림은 따로 달라고 해야 와플이 눅눅 축축해지지 않는다. 뜬금없이 생크림이 올라간 와플이 드시고 싶다길래 급히 찾아 데리고 나선다. 본래의 목적인 와플보다 크로스무슈가 좀 더 맛있었다. 자몽 에이드는 다른 곳들보다 1.5배는 진했다. 카페 안의 제빙기가 고장이 났는지 소음이 심해 얼른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음식이 나오고 얼마 안돼 소리가 멎었다. 카페를 목적으로 카페에 온 게 결혼하고 나서 처음인가 싶어 조금은 웃겼다. 각자 만화책을 보고 노래도 흥얼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뭐 별거 있나.
여름이 길어질 수록 밤은 짧고, 잠은 줄어든다. 사무실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을 챙겨먹을 때까지 기억은 드문드문 없다. 밝은 새벽도 모자른 잠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핑거 스미스를 다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다 서점에 가서 책의 두께를 보고 놀랐다. 출생의 비밀은 전 세계에서도 통하는 만능 치트키인가 싶어 실망했지만, 영화의 엔딩보다 책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곳에 앉아 있는 모드와 그 모드를 바라보는 수. 내가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 이게 현실이지- 가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살아 남아 생을 이어가는 모드가 (그렇지만 수에게는 목숨을 내어 줄 것 같은 모드가) 좋았다. 그게 삶인가 싶었다. 주말마다 있는 약속에 주말 늦잠도 없이 이르게 일어나 움직이니 피로가 ..
어머님께 '체리가 참 싱싱하고 좋다, 이런 맛이었구나' 라는 메시지가 왔다. 시댁에 보낼 것들을 주문한 뒤, 주소를 확인 안하고 시킨 체리가 집으로 오지 않고 속초로 간 모양이다. 맛있게 드시라고, 또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시라고 답을 하고는 어쩌다보니 효도를 했다며 j씨에게 말했더니 바로 '온양에도 보내'라는 답이 왔다. 이런 맛이었구나 라는 문장에 둘 다 아랫배 쪽이 근질 근질 했던 모양이다. 엄마랑 통화를 하며 체리를 보내겠노라 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렇게 체리 귀신이라며, 체리가 생기면 자기는 한 두알 밖에 못먹는다고 투덜거렸다. 이번에 보내는건 엄마도 절반 먹으라고 하고나니 벌써 한 시간을 통화했더라. 나는 통화도 예쁜 말도, 살가운 애교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이제서야 '엄마'인 ..
이 녀석은 주차장 한 켠에 박스 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사람을 너무 잘 따라서 항상 걱정이 된다. 혹시나 해꼬지 하는 사람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갈까 싶어 야옹 하고 다가오면 일부러 발을 굴러 저리 가라고 하지만 그닥 위협적이지 않는지 아주 조금만 떨어져 말똥말똥 바라본다. 요즘은 저 경차 위가 마음에 들었는지 수시로 올라가 잠을 자곤 하는데 사진을 찍느라 한동안 보고 있자니 바로 내려와 발라당 누워 뒹굴거린다. 너무 그러면 못 써, 해보지만 못 알아 듣는건지, 모르는 체 하는건지.
주말 내내 비가 온다던 일기 예보는 아침에 다시 보니 그새 바뀌어 흐림 구름으로 가득했다. 우산은 챙기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방수 가방에 담았던 것들을 크로스백으로 옮겨 담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한 덕분인지 장마철이라 놀러 가는 사람이 덜한 덕분인지 많이 밀리지 않게 도착해 이른 점심을 먹고 한숨 자라는 말씀에 괜찮다며 산책에 따라나섰다. 산책인지 산행인지 모를 걸음의 끝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바람이 잔뜩 불어오는 그늘에서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뿌연한 물을 들여다보았다. 요즘의 나의 상태는 괜찮지만 괜찮지 않고,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 대체로 괜찮은 상태가 계속되는 와중에 가끔씩 괜찮지 않은 상태가 밀려올 때면 괜찮은 이유를 찾아 금세 괜찮아지고는 하는데, 요 근래 몇 번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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