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 많고 큰 건 손대지 않으려고 했는데. 만들다보니 나도 내가 참 별 걸 다 하는구나 - 싶달까. 언제나 그렇듯 차근차근 하다보면 어려운 건 별로 없다. 그저 귀찮고 번거로울 뿐. 앞판 단추를 놓는 부분의 시접을 남기지 않아 재단을 한번 더 했고, 소매와 칼라의 패턴 방향이 거꾸로라 그걸 다 뜯었었고, 몸판과 팔을 (심지어 오버록패턴으로) 박다 죄다 뜯어야했고 뭐 이 정도. 설명서가 있는 건 일단 시작해 차근차근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니까, 설명서가 없는 게 언제나 어렵지.
조카 2호의 다리는 정말 딱 한뼘이어서 귀엽고 귀엽도다. 백일 맞이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는 크게 묵자면 딱 두식구의 모임인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역시 어른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하나도 없구나 했다. 동생이 육아에 먼저 뛰어들어 내게 가장 좋은 건 어떻게 하면 저 힘든 형식적인 행사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 할 시간이 생겼다는 게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이 직접 뛰어들어 내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더 남들과 꼭 같을 필요는 없다고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거니까.
급 결정 된 제주 행이라 출발하기 삼일 전에 나나 언니에게 밤 약속이 있는지 물었더랬다. 부산에서 엄마와 막내를 기차에 태워 올려보내고 바로 김해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언니 출근 길에 같이 길을 나서면서, 언니가 곧 이사라 이제 다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파란 대문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는 짧은 제주 여행 시작. 언니 회사가 바로 함덕 근처라 아침 먹고 가라며 내려 준 해장국집에서 든든히 속을 채우고 바다도 보고 출발하려고 잠깐 들렀다. 물이 빠져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했지만 여전히 파랗고 예쁜 함덕.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고 물을 들여다보다 걸음을 옮긴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그저 동백. 전 날까지 카멜리아힐과 위미리 동백 군락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위미리로 마음을 정하고 ..
집에서 꼼짝없이 내내 지내는게 좋은 겨울이지만, 종종 밖을 나가거나 이런저런 것들을 먹는다. 12월 말 부터 어제까지의 먹은 기록. 대만 생크림 카스테라와 커피, 로즈힙+히비스커스 티. 계란이 난리라 3월까지 천원 올랐다. 키세키가 좀 더 내 타입이라 플레인보다는 생크림으로 단 맛을 더하고는 한다. 평일 낮인데 사람이 많아서 깜짝 놀란 동대문 에베레스트. 수요미식회에 나왔다더니 역시 방송을 타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운 양고기 카레와 버터난과 갈릭난, 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연한색의 탄두리 치킨을 먹으며 또 추억 여행을 한참 했다. 이 날의 결론은 사람은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나도 살던대로 산다는 것. j씨가 갑자기 카나페를 먹고 싶다고 하셔서 편의점에서 후룻볼과 크림치즈를 공수해왔다. ..
공연이 끝나고 추운 바람에 종종 걸음으로 라페름으로 향했다. 이태원은 역 근처나 경리단 길만 다녀봐서 눈꽃씨만 졸졸 따라갔다. 처음가는 골목골목을 들어가니 이런저런 가게들이 보이고, 작은 편집샵들을 보며 부러워 하고 나니 어느새 도착. 아보카도 샐러드는 재료 소진이라 병아리콩 샐러드와 쿠스쿠스 치킨 샐러드를 주문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매일매일 만나도 조잘조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시간을 금방 보낸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원인어밀리언. 여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알바생들이 훈남이었고, 같은 공연을 본 듯한 테이블이 보여 역시 다들 모이는구나 했더랬다. 낮에 오면 더 아늑할 것 같던 곳. 얼굴이 입체적이었던 눈사람과 함께하는 추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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