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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제 공연은 처음 시작과 중간의 고난에 지치고 또 지쳤지만 공연 자체는 매우 좋았으니 낯간지럽게 오빠를 좀 불러보기로 하고.
음향은 확실히 롤링홀이나 상상마당보다 좋았다. 스피커가 바로 근처에 있는게 아니라 소리는 커도 귀를 직접 때리는게 아니라 귀도 덜 아팠고. 소리도 좀 더 깔끔하게 빠지는 느낌. 마이크 볼륨이 좀 작은 것 같긴했는데, 공연 후반부에 목소리 잘 안들린다는 앞쪽 말에 마이크 음량을 더 높인 것 같았고, 아무래도 처음부터 맞춰진게 아니라 좀 웅웅거리는 감은 있었지만 이미 흥분상태라 그런게 많이 거슬리진 않았다. 그러고보면 스탠딩하는 소극장들은 오빠 얼굴보려고 앞으로 나아가긴 하지만 음향은 맨 앞이 제일 속상한가. 하지만 다음 공연때도 할수만 있다면 앞을 노릴 나를 이미 알고 있다.
조명이랑 뒤에 빔으로 쏘는 영상은 대만족. 특히 초반 굿바이나 등등을 부를때 한참 동안 뒤에 배경에 별이 떨어지고, 별이 흘러가고, 우주가 펼쳐진게 제일 좋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수들 이미지를 떠올릴때 김사랑하면 우주, 별, 밤하늘 이런게 생각이 나는데다, 많은 노래들의 연주 부분이 특히 우주 우주해서 어두운 공연장에서 핀조명이 내리고, 뒷 배경으로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펼쳐져 있으면 정말 우주에서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덕분에 매우 감동하여 쏟아져내리는 배경 한번 보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오빠 한번 보고, 시계추 처럼 왔다갔다 하는 남자 뒷통수 한번 보고, 남의 핸드폰 화면 한번 보ㄱ....ㅠㅠ 그렇지만 오빠와 함께 우주에 있었으니까. 그거면 됐지.
무대는 가로로 넓고 돌출 무대가 있어서 모인 인원들 대비 많은 사람들이 무대 가까이서 볼수 있었던 것 같고, 돌출무대로 간간히 출동해주는데다 1년만에 단공이라고 팬서비스 대량 생산으로 무대 끝쪽으로 나올때마다 허리 펼 시간 없이 손들 잡아주고 노래 불러준 느낌. 멘트하거나 그럴땐 괜히 안 그런척 하면서도 결국은 김다정씨. 게다가 1부에선 수트까지 입어준 김간지씨. 끙끙. 간 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지만 작년보다 좀 더 건강해보이고 더 여유있어 보여서 맘이 좋은 것은 빠순이의 전지적 시점인걸까.
게스트는 허클베리피. '쓰다' 좋다. 김사랑은 쓰다 같이 나릿하게 노래를 부를때면 사람 녹아내리게 하는 재주가 있는데, 직접 무대에서 보면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듯이 그걸 불러서 더 좋다고 해야하나. 나 멋있어, 나 분위기 있지? 나 노래하고 있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이건 내가 너에게 해주는 이야기야' 이런 느낌으로. 헉피는 자신이 성공한덕후임을 자랑했고, 작년 송나미 보컬을 떠올리며 오빠는 역시 남팬이 좋은가봉가, 게스트도 남팬을 데려다 쓰다니 -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씬나게 힙합타임 - 을 하는 와중에 기력이 딸려서 휙 하고 바닥이 올라올 준비를 하길래 챙겨온 포도당 사탕 하나 입에 까 넣고.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추억을 뜯어먹고 산다고 느낀게, 매지컬도 좋고 러브업도 좋고 스토커도 좋고 다 좋은데 제일 좋은 건 킵더그루브나 나 같은 옛날 옛적 노래들. 시골 여중 여고에서 김사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듣는 것만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희귀종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좋다며 주구장창 들었던 노래라서 그런건지 기억에 없을 것 같은 랩들이 줄줄줄 따라나와서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예전 노래는 씨디로만 들으니까 전주가 나오기 시작하면 어릴적 날선 목소리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공연장에서 듣자면 벌써 십년도 더 된 그 곡들이 - 그때보다는 날이 덜 서 있지만 더 성숙한 소리로 들려온달까. 사람이 나이를 '잘' 먹자면 막무가내로 내지르는 것보다 속에서 몇번 더 다듬어서 꺼내는게 되는데, 그렇게 나이를 '잘' 먹어준 것 같아서 예전의 그 김사랑도 좋았지만, 나이 먹은 김사랑이 조금 더 좋구나 라고 한번 더 느끼게 되는 우리의 시간들.
그래서 나는 시간들을 더 보내면서, 우리가 예전보다 덜 예민해지고 더 여유로워지길 바란다. 아마도 내내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을것 같아서 '우리는 괜찮으니 너도 만족해라'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 가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셋리스트, 곡별 감상 그런거 없음. 언제나 공연 시작 전까지 스스로의 건강과 다음날의 출근과 기타 등등을 걱정하다가 첫곡이 시작함과 동시에 모든걸 잊어버려서 심지어 전전곡이 뭐였는지도 기억에 안나는 단기기억상실증이라서(...) 공연 보고나면 엄청 단편적 기억들만 남아있다. 앞머리를 넘기던 손, 조명이 어두워질때면 팔목에서 반짝이던 지퍼 모양의 형광 팔찌, 자잘한 꽃무늬가 가득했던 기타 밴드, 무대 왼쪽 끝쪽에서 서있던 모습 , 무대 가운데 앉아있던 모습, 으쓱거리기도 하고 슬쩍 웃기도 하던 다양한 표정들, 오빠 뒤로 내리던 별들, 비들, 갈색 도시의 풍경들과 밤새 그 자리에서 지켜본 기분이 드는 별의 움직임들.
다음달 어쿠스틱 공연은 규호언니 보러가야해서 못가지만 연말 쇼파르콘과 내년에 싱글 내준다니 단콘 또 있을거라고 기대만 가득. 기대받는거 부담스러워 하는 성격인거 알지만, 인터넷 한구석에 눈에 띄지 않게 있는 내 기대같은건 딱히 가서 두드리지 않을테니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나저나 공연을 토요일에 해주면 참 좋을텐데. 오늘도 아침에 몸살나서 출근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남았지만, 다녀오길 잘했다. 덕분에 오늘도 하루종일 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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