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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_e 2010. 2. 17. 16:00
1.
생각이 많다. 생각하던걸 포기해버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시작하니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이 결론을 향해 가는 절차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무언가에게 내가 소비되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질머리는 이런데에 안 좋은 방향으로 쓰인다. 절차에서 소모 될 감정들이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친다. 그래서 사실 아무하고도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삶을 바랬다. 모든 것의 끝은 아무리 좋게 오던 나쁘게 오던 서로를 갉아먹는 절차를 꼭 밟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 삶을 바라려면 전부 버리고 상자 안에만 들어있어야하기 때문에, 그 상자에 들어갈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 혹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온전히 혼자일때가 편했다, 내가 무슨 결정을 하던지 그건 나만의 것이었으니까. 내 결정에 조금이라도 다른것들이 말려들어온다는게 감당이 안되서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못한다. 로또를 해야하나. 생각이 늘어나니 두통이 그칠줄을 모른다 - 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강박이고 그냥 날이 흐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두통약이나 사먹어야지. 두통약은 사두면 나도 모르게 다 사라지더라.

2.
하지 않는게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되는 - 안 좋은 버릇 몇개가 뱅글뱅글 돌면서 반복된다. 나만 그러면 그나마 혼자서 감당하고 눌러 참으면서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나만이 아니라 주위의 몇몇도 그 모양이다. 몇일의 연휴 동안 나는 버릇을 반복했고, 그녀도 길고 긴 통화로 그녀의 버릇을 반복했다. 속이 뒤집혀버려서 가끔은 견딜수가 없다. 안그렇게 생겨서 - 혹은 그렇게 생겨먹어서 - 편집증 비슷한게 있다. 덕분에 견딜수가 없을만큼의 한계치에 도달하면 어디든 머리 좀 들이 받아서 기절이라도 하고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이뤄질 거였다면, 견딜 수 없는데 까지 참을 이유도 없는거니까.

3.
어제는 두통이 심해서 회사도 땡땡이치고 집에서 얌전히 있었는데, 암것도 안하고 손하나 까닥안하고 싶었는데 컴퓨터가 병맛이라 포맷을 하고 프로그램 다 깔고 났더니 뻑이나서 또 포맷하고 (...) 포맷으로 반나절을 잡아먹고, 마그나카르타(무려2회차)를 조금 하다가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는데 아 리드, 나보다 오빤에 그냥 왠지 내 새끼라고 불러야 할것 같달까. 우. 시즌1 끝을 그따위로 끝내놔서 핸드폰에 하우스 시즌6을 넣어두었던걸 지우고 시즌2를 밀어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드는 현실도피의 베스트 수단인것 같다. 시험 공부나 해야지 대체 뭐하고 있는거지 나는.

4.
예전의 그 감성과 우울과 예민 그 자체였다면 지금의 이 상황을 견디지 못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태였어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긴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를 믿는다기보다는 어떻게든 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믿음이겠지만. 그래서 현실은 가끔씩 더럽다. 내가 뭘 어떻게 하던지 결국은 소수의 확률을 제외하고는 다 비슷비슷하게 될테니까. 더 문제는 그 소수의 확률이 좋은쪽이면 참 좋은데 내게는 거의 다 나쁜 쪽이었다는거에 있을테고. 그래서 차라리 비슷비슷한게 낫다는데에 또 있을테고.

5.
아, 떠나고 싶어. 혼자 우두커니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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