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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결여

_e 2013. 9. 6. 11:10
아침 일과로 RSS 투어를 하다 나랑 비슷한 여자사람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쓰는 글.

예전부터 해오던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친구인 A가 사과를 들고 있을때, 나는 A가 들고 있는 사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과에 대해 관심이 생기는 몇몇 케이스가 있다면 내가 사과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있었거나, A가 나에게 사과를 선물로 주거나, 사과가 나를 때리거나 정도. 보통은 여기서 '사과가 맛있어 보이네요' 정도의 멘트로 대화를 진행하는게 정석일텐데 나는 그냥 '아, 사과'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끝이거나 사과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한다. 그럼 상대방의 7-80%는 '왜 내가 들고 있는 사과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라고 직접 묻거나 티나지 않지만 티나게 생각을 하는데 - 불과 1,2년 전만해도 이런 것에 대해 미칠 듯이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결여에 대한 부분이 확실하게 정립 되었기 때문에 머리로 알고 있는 답을 몇개 건내주거나 말없이 웃는 정도로 그냥 넘어간다.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노력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만족할 만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는 내가 결국에는 지칠 수 있는 것이라서 굳이 관계의 파탄을 위해 달릴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해보면 어릴적부터 이런게 있었던 것 같다. 꼬꼬마 어린이들은 (어째서인지 벌써) 그때부터 집단을 형성하고 말이 되던 안 되던간에 그 집단에서 정해지는 암묵적 규율을 따르게 되는데 나는 그런게 없어. 예를 들자면 애들이랑 모여서 계란을 먹는데 어느 한명이 '노른자는 병아리야 그러니까 안 먹어!' 라고 선언하면 다같이 흰자만 홀랑 까먹고 우르르 달려나가는데 나는 거기 그냥 앉아서 내 배가 찰 때까지 노른자를 먹었다. 나는 노른자가 맛있으니까. 중학교때인가는 같이 도시락을 먹는 친구중에 하나가 나에게 큰 결심을 하고 '네가 따돌림을 당한다'라고 고백하였는데 그 이유라는게 매일 김치볶음을 싸와서 그렇다는 거였다. 보통은 그러면 가난한 자신의 집을 원망하거나 충격과 상처를 받거나 이럴텐데 (티는 안냈지만) 속으로 '그럼 혼자 먹게 내버려 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나는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걸 몰랐어 (...) 스스로에게 흑역사인 고등학교 시절에도 '감성이 풍부한 애정결핍 여고생 코스프레'를 하던 당시였건만 남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줘야한다는 강박만 있었지 정작 관심이나 궁금증은 적었던 것 같고, 그래서 집착하고 특별함을 꾸미고 그랬던 것 같다. 결코 남들만큼 채워질리가 없고, 남들만큼 채우면 빵 터져버릴텐데 남들만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초등학교때부터 친구, 중학교때부터 친구가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기에는 특히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줄 누군가와 가장 절친이 되는건데 난 그런걸 주지 못했으니까.

요새도 포함 항상 들어오던 이야기가 '조금만 노력 하면 훨씬 잘 할텐데'였고, 들을 때마다 생각했던건 '왜 잘해야하지?'였다. 사회 나와서 이걸 가장 못 견딘다고 해야 하나 이해를 하지 못했던건 노차인데, 노차는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돈을 잘 벌수 있다고 나의 가능성에 대해 항상 피력하고 그것에 관심없는 나를 보며 답답해한다. 나는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 필요도 없고 (물론 노력하지 않고 더 버는건 괜찮아)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치를 가지기 위해 (하다보면 재밌겠지만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고 싶지도 않으며, 애초에 남들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도 없고 뛰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헤 잘하네' 정도의 감상이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나보다 노력했거나 나보다 타고 났을거라는 생각 정도지 부럽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호승지심이 생기거나 이런게 전혀 안되는 구조랄까.

그러다보니 남들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저 위에 썼던 사과와 같은건데, 나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나 재능, 사건등에 대해 부러움도 없고 질투도 없고 일종의 무심한 상태인거다. (이렇게 이야기 하자면 대체 아무런 관계 없는 타인과 지인의 차이가 무어냐고 물어보는데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의 척도가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아닌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가 참 어렵다) 남들이 물어보면 나에 숨기는게 없으니 대해 답은 잘한다. 다만 상대방에 되묻거나 하는건 어렵다. 그냥 좋으면 좋은거지 상대방에 대해 시시콜콜 알아야 될 필요가 있나 싶고, 어차피 큰 일이 생기면 말해줄거고 거기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나는 만사 제쳐두고 그걸 도울거고. 실예로 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제외한 경우에는 몇년 이상을 알고지내며 친하게 지내는 관계에서도 나보다 위, 아래 정도만 알지 그 친구들의 나이를 정확히 기억 못한다. 나이가 대체 뭐 중요해 - 라지만 가끔 그게 중요한 사람들은 그걸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가더라. 그럴때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거고.

원래 사회나 개인이 발전하려면 경쟁심도 있어야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어야하고, 그런걸 가진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달리다보면 덩달아 남들도 함게 달리고 위로 올라가고 나도 발전하고 남들도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하고 그런 프로세스. 그런 의미에서 향상심이나 발전이 없는데도 그것에 만족하면서 살아 가는 내가 문제 - 인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러우니까.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만큼 쓰고 사는 사람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고. 다만 걱정은 나중에 애를 낳게 되었을때 그 아이를 위해서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더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서 방치하게 되는건 아닌가 정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이 다 하니까 몇백만원짜리 유모차를 사는 건 상상도 안되고 (...) 환경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잘하고 못해도 아이의 근본이 아이의 미래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걱정은 접어두고 케세라세라.

나 또한 정말 다행인건, 이런 나의 결여를 j씨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 이 부분은 솔직히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시겠지만 부정하고 싶을테니 알아주지 않는 부분이고 남들은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j씨는 나의 루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차에게 '그러니까 송쏠랭은 더 잘해야하고 남들을 이기는 이유가 없다니까'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거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j씨에게서 꽤 많은 부분을 받고 사는구나 싶고, 이렇게 쓰다보면 왜 나의 결여에 대해 쓰다 같이 사는 사람 자랑이 되어버렸나 싶고, 딱히 그러려던건 아닌데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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