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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었다. 백팩을 매고 운동화를 신기를 잘했다. 남쪽은 따뜻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았다. 기차를 놓친 현이는 아침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녔고, 이야기를 들은 J씨는 너무 일찍 출발한 탓이라며 혀를 찼다. 켄과 함께 도착한 죽녹원에는 무섭게 생긴 팬더들이 우리를 반겼다. 너무 무서워서 사진은 올리지 않을테야. 마치 팬더 분장을 한 사람의 조각상 같았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오는 죽녹원에서 이런저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아무말을 하지 않기도 하며 우리는 걸었다. 스산한 겨울에도 파란 대나무 숲은 밖보다 추웠지만 서늘한 공기가 싫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 여유로운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여름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사실 겨울엔 정말 사람도 없고 볼 것도 없다. 그래서 겨울 여행이 좋기도 하지만.
점심은 죽녹원 근처 국수 거리에서 비빔 국수. 아무 생각없이 비빔국수 세개만 시키고 한참을 매워하며 먹고 나니 하나는 그냥 멸치 국수를 시켰으면 좋았을거라는걸 깨달았다. 하여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 소면보다 중면을 좋아하는데 중면으로 나와서 더 맛있었다. 엄청 맵긴 했지만 생각하면 또 먹고 싶은 맛.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을 거쳐서 메타세콰이어길. 남들 자전거 타고 달리는 길을 마냥 걸었다. 돌아와 계산을 해보니 이틀동안 한 15km 정도 걸었더라, 생각했던 것 보다 적어서 조금 놀랐다. 정말 열심히 걸었거든. 여기도 겨울이라 춥고 황량하기 그지없는데다, 우리가 놀러가는 걸 기념하는 듯이 1월 15일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었던 덕분인지 사람이 정말 거의 없었다.
나오는 길에 커피를 한잔 마시고, 가게 주인 아주머니 퇴근길에 함께 나와 어둑어둑해진 4차선 도로 옆을 걷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도 만세. 스마트 폰 없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았었던 걸까. 한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길을 걷다보니 드디어 담양터미널. 배가 고프고 춥다. 그래도 제때 도착했는지 한시간에 한두번 있는 버스가 십분 후에 출발이다.
슬로시티에는 한옥 민박집이 몇군데 있는데, 차를 주는 곳보다는 아침을 주는 곳이라며 선택한 매화나무집. 늦으막히, 그것도 귀찮아 하던 버스 기사 아저씨 덕분에 한정거장 전에 내린 우리를 마중 나오셔서 밥 집까지 안내해 주신 아저씨도, 한명 줄었으니 미리 예약한 예약금 잊기전에 가져다 준다며 만원을 내밀던 아주머니도, 엄마가 시키니 마지못해 가져다 주었겠지만 한과를 가져다 주던 수줍은 아들도 모두 친절했다. 놀러가서 처음이다시피 일찍 일어나 8시 아침상을 받았지만 누룽지와 직접 담근 장아찌들, 과일까지 - 이 정도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일도 아니지.
소쇄원도 역시나 춥고 사람이 없고 황량했다. 사진만 찍으면 보이는 것 보다 춥고 황량하고 무섭게 나와서 좌절을 하기도 했다. 아... 담양은 겨울에 가면 안되는 곳이었구나. 그래도 좋았던 소쇄원. 사전 정보 하나 없이 담양에 가면 소쇄원은 한번 들러보라며 갔던 곳이었는데 들러보라고 할만했다. 자원 봉사하시는 할아버지분께 설명도 듣고, 죽녹원이나 메타쉐콰이어길보다 더 다른 계절에 와 봐야 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광주역으로 나가려고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에는 동네 할아버지가 같이 기다려주시며 친절하게 버스 시간도 말씀해주시더 니 나한테 외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아니 그러니까, 머리를 염색한 현이도 있는데 왜 나한테 ...
떡갈비를 먹겠다며 소쇄원 - 광주역 - 광주 송정역 요 코스를 밟았다. 아무 생각없이 지하철을 타겠다며 광주역에서 한 2km는 걸었던 것 같고, 그 와중에 배는 점점 고파오고. 고난의 코스를 거쳐 도착한 떡갈비 거리는 말그대로 떡갈비가 가득. 그리고 떡갈비는 맛있었다. 냉동 떡갈비라고 해야하나 사서 구워 먹었던 떡갈비들을 매우 안 좋아하는데 얘는 맛있다. 떡갈비 만세다. 그리고 나는 이런게 아니면 앞으론 떡갈비를 절대 먹지 않게 되겠지.
서울 촌놈은 신기하기만 한 광주역 지하철 표. 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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