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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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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화구이팬을 붙들고 쿠키를 구워내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J씨가 미니오븐을 사라 - 고 했다. 사준다는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부부의 삶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에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것은 우린 가족카드라 누가 쓰던 결제가 한곳으로 나가니까. 놓을데가 없다는 나의 말에는 어떻게든 놓을 곳은 생긴다고 말씀하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수 밖에. 그래서 오늘 온다. 미니오븐이지만 26L인지라 결코 미니는 아니라서 생각엔 전자렌지가 방으로 들어가게 될것 같지만 (다음엔 꼭 주방이 넓은 집으로 이사가야지) 그래도 신난다. J씨와 나는 봄날의 곰처럼 부둥켜 안고 뒹굴거렸고, J씨는 내게 물었다.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무어가 있겠어요. 더 필요한건 없나? 우리에게 필요한건 돈이지 이히히. 농처럼 나누는 말속에는 욕심으로 비롯된 불행이 요만큼도 내재되지 않은 우리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있을거다. 함께 해 온 시간이 길다는 것은 서로에게 욕심내지 않고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적당한 온도를 찾았다는 것을 말하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은 뭉근하게 오래 끓인 스튜인양 차도 뜨거워도 맛이 괜찮을 거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말해왔다. 우리 참 괜찮게 사는것 같다 - 고.

좀 더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서 깨달았다. 세상에는 아직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것이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본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잘못을 하고도 잘못이 아닌게 되려면, 모두가 그 잘못을 행하고 있거나 모두를 납득 시킬 수 있는 그럴싸한 변명을 해야만 한다. 열심히 지어낸 변명을 사람들이 지적한다고 해서 거기에 발끈하면 떼쓰는 것 밖에 안되는거다. 원인을 제공해놓고 '이 행동은 나쁜거니 저 새끼가 나쁜놈이라고 내 편을 들어주세요' 라고 말하는건 - 예를 들자면 상대방을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칭하면서도 다그치고 몰아세우고 떼써서 코너에 몰아놓은 뒤 결국 폭발하면 폭력은 나빠요 라고 남에게 호소하는 거랄까 - 치사하지 않나. 남의 잘못이 분명하려면 내 잘못도 확실히 해두어야한다. 타인에게 엄격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것도 적당히 해야 삶이 윤택해지는 걸테고. 무슨 일만 일어나면 다 자기 탓이 아니고, 자기가 잘못한것의 원인은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살면 행복해지는걸까. 겉보기에야 '지 혼자' 행복해 보이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잘못한 구석이 있으니 불행한건 아닐까. 물론,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자기 방어 기제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모든것을 정당화 시키는 (남들이 지적하면 지적하는 남이 당연히 이상한) 사람들이야 저 혼자 세상살며 행복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행복해지는데에 남이 상관이 있다는 것이 우습다. 다른 사람과 나누는 애정과 교감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이니 어쩔수 없이) 괜찮지만, 남을 깎아내리고 불평 불만을 하면서 '저 사람이 이것만 고치면 나는 행복할거다'라고 말하는 이는 어째서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기는 걸까. 이걸 고치면 자기가 말해놓은게 있으니 한동안은 행복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곧 저것이 보여서 그걸 바꾸려고 달려들고 바꾸라고 닥달하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 내게 100% 만족스러운 사람이 어디에 있지.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100% 만족하지 않을거면서. 게다가, 그토록 소중한 행복이라면 왜 대체 내가 쥐지 않고 남의 손에 쥐어 주고 불평하고 마음 졸이고 있는것인가. 행복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 나는 너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하려고? 에이, 모르겠다.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잘 살겠지 뭐, 다만 자기네들끼리도 좀 행복해서 나랑은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의 행복을 쥐고 짤짤짤 흔들어 댈만한 위인이 못되서 쥐어주는 즉시 바닥에 버릴지도 모르겠으니까. 허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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