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주말부터 계속 되던 미열 상태가 드디어 그쳤다. 뭐가 그렇게 못마땅했던지 정신을 못차리게 열이 올라 주말의 하루는 꼬박 누워있는 것으로 날렸었더랬다. 신기하게, 몸이 아픈게 줄어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이 나 어지러운건 없어질줄을 몰라서 성질이 지랄맞다는 주위 몇몇의 말을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수가 없다. 내가 '닥치면 결국 해내는' 걸 알고 있기에 스스로를 믿었건만, 믿음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어 열이 나버렸던 모양이다. 

프로젝트의 디자인 공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요즘이야 정신없이 바빠 온갖데 신경질을 낼 조라 차라리 지인들과 말을 섞지 않는걸 택하곤 한다. 프로젝트 룸은 웃음소리로 가장한 날카로움이 맴돈다. 그것들을 캐치해서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드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나는 얌전히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방금전 어딘가의 심심해서 언어 영역을 풀어보았다던 글의 댓글에서 보았다. 나이 먹으면 점점 언어영역은 쉬워진다고. 언어와 사회화와는 관련이 있지만 없기도 하다. 내게는 사회화와 언어는 독립적인 존재라 내가 아무리 언어 영역을 쉬워해도 사람과의 관계에 쉬움을 느끼거나 흥미를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비단 사람 뿐만이 아니라 내가 흥미 없어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반응이 유난히 없는 게, 오늘 아침에만해도 티컵 강아지 기사를 보내준 지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모르겠어서 결국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오히려 고양이면 조금 더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여야만 했다.

생각이 많아 어젯밤은 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주제에도 결정적인 거에는 어마어마하게 단호한 성격인데, 퍼줄거 다 퍼주면서도 이것만은 안되라며 감싸 안고 있는게 있더라. 일종의 인지의 차이인 것 같고, 내가 그 사람의 속에 들어갔다 나올수가 없으니 확실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10의 수치를 가지고 있는데 양보하고 양보해서 7까지 기준을 끌어 내린건데, 저쪽에서는 내 가진걸 한 8 정도로 생각하고 8에서 7로 낮춰준거구나라고 인지하고 있는건 아닐까 싶었던 거다. 나한테 10은 북한 애들한테 김일성이 신인거랑 마찬가지라 10 이외의 것은 생각도 못해보고 내 미래에 적용의 시도조차 안해봤는데 그게 7이 된거면 어마어마한거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게 또 그 쪽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고. 안하던 생각의 물꼬를 트자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또 열이 오를라, 생각을 접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발가락의 메니큐어가 몇주째 손을 못댔더니 벗겨져 보기가 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