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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방어 기제를 삼는 덕분에 평소에는 기억이 부분부분 비어있다는 말에, J씨는 그건 좀 심하다고 농담인양 말했다. 하지만 예민하던 나에게 사소한 것에 의해서도 아무때나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기억들이라, 비워두는 것도 의식적으로 하자면 하지 못한다는 답은 하지 않고 정말이라며 웃었다. 모든것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졌다. 그래야만 전부 잊고 비워둘 수 있으니까. 그래서 스무살 초반의 기억들은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비어있다. 이십대 다 건너뛰고 서른이 오기만을 바라던 때였으니까.
가끔 길을 걷거나 책을 읽다가, 낄낄대며 웹서핑을 하다 '아'하고 소리내어 하던것을 멈춘다. 지나온 일들과 지나온 시간들은 그렇게, 그 시간에 함께 했던 자그마한 소품들이나 풍경들에 의해 떠올려진다. 이제는 그립지 않은 (그립지 않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야기는 추억되어지고 되새겨지면서 조금 더 나은 기억으로 변했다.
그러한 것은 추억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이 없으면 떠올려질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이 지나온 시간들인데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몇몇 이들처럼. 그러고보니 굳이 나쁜 기억이 아니지만 비어있는 부분도 많은걸 보니 나는 굳이 방어 기제가 아니더라도 공백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왜 갑자기 추억을 곱씹는 사람이 되었느냐면, 한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재출간 되었다는것을 볼때마다 나는 우유 언니가 떠오른다는걸 몇번의 반복 끝에 깨달았거든. 그 산문집은 우유언니가 거의 첫 만남 쯔음에 브라우니와 함께 선물해줬던 책이었다. 친구를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결국 빈 기억이 되었지만 - 그리고 바로 절판이 되어 구하지 못했다 -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우리가, 책을 선물 받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던 때도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신기하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마주보고 웃고 있었는데, 우리는 참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는 중인 시간은 항상 느렸다. 지나고 난 시간들은 항상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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