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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과 12월은 들숨과 쉼으로 지낸다. 가쁘게 내뱉던 것을 가다듬고 찬찬히 들이 마시고 있다. 집에 앉아 연하장 대신 쓸 달력을 만들고, 연간 행사로 작업하고 있는 다른 달력도 하나 더 만들고, 엄마의 예전 사진들이 담긴 앨범을 만들고, 일감이 하나 생길 것 같아 업체 미팅을 준비하고, 어느 날에는 침대에 꼼짝을 않고 앉아 책을 읽다가, 찬 바람에 덜덜 떨며 환기를 하고, 웅크린 고양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6시간마다 15분씩 돌아가는 보일러가 작동할때는 덥다가 쉴때는 춥기도 하고. 이런저런 저런이런 날들.
어제는 왠일인지 평소에는 잘 들여보지 않던 시집 코너에서 서성이다 책을 한권 펼쳤다. 펼친 면의 시가 단번에 마음에 들어 사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약속도 남아있고 매고 있는 가방은 작은 크로스백이라 일단 내려 놓았다. 손에 뭔가를 들고 외출을 하면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에너지를 빼앗기는 기분이라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습관 덕분에 괜시리 작은 가방이 야속하다. 약속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길에도 한번 더 고민하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머릿 속에 맴맴 돌아 - 사실 몇 시간이 지나니 단어와 문장의 글 들은 남아있지 않고 '좋았다'라는 느낌만 남았지만, 바로 온라인 주문을 한다. 당일 택배를 해준다지만 주문을 했을때는 이미 저녁이었고, 우리집은 택배가 늦게나 오기 때문에 기대를 버리고 잊고 있을 쯤 도착한 책을 한번 더 펼치니 다시 그 글이 보인다. 별다른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마음에 들었던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도 그저 좋다. 삼십년을 가까이 읽어왔던 글 중에 시가 이렇게 가까이 느껴진 적이 있었던건지, 시를 느낄 나이 - 라고 쓰니 참 나이를 먹었나 싶다.
납작해진 언덕에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허다한 행복을 겪었다. 모두 한 번에 쏟아진 시간이었다. 잎사귀가 공중을 덮었다. 새가 울타리 안쪽을 걸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 나는 이야기 속에서 -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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