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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횡단 보도나 스크린 도어가 없는 지하철 역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혹은 옆으로 비켜 서 있고는 한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언제 누가 와서 날 밀어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여자의 비율이 높은 흔한 도돌이에게 인상을 쓰거나 화를 냈다는 j씨에게는 그러다 몰래 쫓아와 칼로 찌르면 어쩌냐며 말 없이 지나가라고 부탁했다. 밤에는 이어폰 한쪽을 빼고 걷는다. 내가 아무리 노래를 낮은 볼륨으로 틀거나 틀지 않았다고 해도,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소리를 못 듣고 방심하고 있는 것 처럼 보여 (안 그런 것 보다는) 쉬운 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가끔 나를 향해 돌진하는 '적'을 향해 발길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혹은 내려 찍는 시뮬레이션을 그린다. 원한을 흩뿌리고 살지는 않았지만, 나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인간이라서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지만, 그것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더 크게 본다.
혹여나 내게 해를 입힐까 몸을 사리고 염려하는 '또라이'의 성별은 따로 구분 되어 있지 않다. 어린 여자라서 만만하게 보고 고함을 질러대는 아줌마와 할머니를 충분히 보았고, 굳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애정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을 제공하는 처자들도 만났다. 운이 좋은 덕분인지 만났던 애인들은 모두 젠틀했고, 몇몇의 헤어질 때 찌질함은 한 때의 치기였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의 공격력이었다. 하나의 멍멍이가 있긴했지만 나의 숨기고 사는 또라이력이 상호작용으로 튀어나와, 그때는 내가 당했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를 무찔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길을 걷다 '적'이 나에게 달려오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여자라면 맨 몸으로 가능은 하겠지만 그래도 뭘 들고 있을지 모르니 돌을 집어 들 것이고, 남자라면 맨 몸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생각 할 것 없이 돌을 집어들겠다는 것은 조금 다르긴 하다. 아마 남자들에게 더 권력이 있으니 이것은 남자들의 잘못이다 라고 주장 하는 사람들은 저 감정을 더 크게 느끼는거겠지.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법이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요란하게 장식하는 여성 혐오와 미러링과 그것에 대한 대적과 이어지는 남성 혐오를 지켜보며, 굳이 남자에게서만 위협을 느끼며 살아오지 않은 것과, 인간의 악함이 당연하다 여기고 살아오는 것이 축복인지 아닌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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