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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뜸했던 정리벽이 또 도졌는지 평일 퇴근길에 다이소를 들러 바구니를 집기 시작했다. 나름 차곡차곡 쌓여있던 한쪽 찬장의 물건들을 죄다 꺼내 바구니에 담아 다시 넣었다. 오래된 베이킹 재료들은 쓰레기 내다 놓는 날 죄다 쏟아 버리려고 한쪽으로 치워두고, 다 쓴 캔들 용기들도 한쪽에 차곡차곡 쌓는다. 냉장고는 쌓아두는 것 없이 살려고 평소에도 노력하고 있으니 늘어져있는 식재료들만 바구니에 담아 칸을 채운다. 꼼꼼히 살펴보니 버려야 할 잼들도 한 두병 나와 냉큼 빼내고 내용물을 비우고 헹궈둔다. 이 정도면 됐다 하고는 식탁에 늘어 둔 것들은 일단 내버려 두고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 책상 정리도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치운다고 생각했지만 구석구석에 박혀있던 서류들과 명세서, 영수증들을 죄다 꺼내고 분류해 파일철과 쓰레기 봉지와 재활용 박스에 옮겨 담는다. 식탁에 늘어둔 것들은 j씨가 거들기 시작하니 금세 끝나 자야 할 시간에 딱 맞춰 1차 정리는 끝. 자기 전에 거실 책장의 사이즈를 재고 안방 장농의 사이즈를 재서 수납박스들을 주문을 한건 그다음의 이야기. 부모님이랑 같이 살 때는 정리를 딱히 하고 산 것 같지 않은데 혼자 나와서 살기 시작한 언젠가부터 줄을 맞추고 각을 맞춰 수납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쌓고 쌓아 버리는 것 없이 빼곡하게 줄 맞춰 넣어두는 것이 버릇이었다는 것. 무언가를 주저 없이 버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마추어 비움러인지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좀 더 버리고 담고 버려보자.
건강 검진도 했다. 운동 한번 하지 않고 + 순하지 않은 성질머리를 장착했으니 잔병은 많이, 그렇지만 엄마가 튼튼하게 낳아준 덕분인지 큰 병은 없이 살아왔으니 이번에도 역시 무사통과다. 내시경과 초음파에서는 흔하디 흔한 위염이 나왔고, 밥도 안 먹은 상태였으니 당연히 혈압은 저 밑바닥이고, 인바디에서는 근육 부족과 저체중이 나왔지만 체지방은 조심해야 하는 - 까딱하다간 마른 비만이 되기 딱 좋은 전형적인 운동부족의 결과가 나왔다. 혈액 검사 결과야 기다려봐야겠지만 뭐 별것 있겠냐 싶어 걱정도 없다. 다만 전 날 밤부터 이어진 금식 + 늦잠으로 인한 아침의 서두름 + 기약 없는 기다림 등등으로 지친 우리는 검사가 끝나자마자 명동으로 향해 하동관을 들어가 국밥을 먹고, 동네로 돌아와 설빙과 빵을 사고, 평소의 한 2배 이상으로 끼니 식사+디저트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차려지더라는 것. 역시 큰 병보다 실생활에 더 중요한 건 당 떨어지는 것이었나. 당은 중요합니다. 수면 내시경의 여파로 낮잠까지 자고 일어나 저녁까지 먹고는, 우린 절대 굶어 살을 빼진 못할 거 같다며, 굶는 걸 그만 두는 즉시 요요를 향해 맹렬히 달릴 거라며 웃었다. 이제 굶을 일도 없으니 적당히 먹고, 운동이나 좀 하면서 겨울을 보내야겠다.
그나저나 마취제 놓는다고 바늘 꽂던 손목 혈관은 또 신나게 터졌는지 멍이 가실 생각이 없어 빨갛고 누렇고 시퍼렇고 아프다. 어째서 나의 혈관을 파괴하지 않고 바늘을 꽂는 이는 없는 것인가.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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