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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_e 2015. 11. 11. 15:45

감기가 왔다. 안 그래도 추워지는 날씨에 왠일로- 라고 생각했건만, 아침에 일어나는데 콧물이 코피처럼 후두둑 쏟아졌다. 보통 감기가 1단계에서 시작해 5단계가 클라이막스라고 하면, 이번 감기는 어느날 눈을 떴더니 3단계 비상 비상 메이데이의 느낌이다. 마치 휴롬이 된 느낌으로 콧속은 가득차고,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진다. 도대체 코와 눈과 입은 어디서 그 많은 액체들을 가져다 쏟아내는걸까. 부은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대며 버스에 올라타 뜨끈한 히터를 발에 쬐이며 출근을 했는데,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으니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조퇴+휴가 찬스를 이미 위장병으로 지난 주에 써버렸으니 어찌어찌 하다보면 이번주도 지나가리라 멍하니 지내는게 답인가한다. 점심을 먹고는 병원을 가서 시럽을 잔뜩 받아왔다. 이번 시럽은 크고 맛이 없다.

마주 걸어오는 '여자'들에게 왜 자신의 앞길을 막느냐며 화를 내던 '홀로 좌측 통행 아저씨'는 아니나 다를까 코뿔소처럼 나의 가방을 들이 받았다. 고작 여자 가방이니 나를 위협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나의 가방은 매일을 무겁고 무겁고 무거워 키가 줄어 들것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저씨의 입에서는 얕은 억소리가 나왔다. 무어라 하고 싶은 모양인지 나를 슬쩍 보았지만 감기에 걸려 아마도 눈이 풀려있고, 얼굴 가득 마스크를 쓴, 아이라인만큼은 선명한 여자에게 딱히 할 말을 못 찾았는지 인상을 쓰고 다시 걸음을 계속 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자신보다 약한 여자에게만 강하게 구는 사람들을 볼때 마다 이래서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당하는 불합리에 대해 큰 소리를 내는 것인가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자기보다 약한 것에 강한 것이 자연계의 이치이지만 유난히 필요 이상으로 쓸모없이 강한 것이 인간이지 싶다. 그러니 오늘도 지구야 미안해.

적아저씨가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를 듣는다. 예전 슈스케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아직도 돌려듣고 있는데, 갑자기 적아저씨가 내 앞에 뿅 나타나서 '그 노래 듣고 좋았어? 근데 나는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동굴로 들어가는 곽진언 목소리가 더 내 취향인데도, 시간을 더해 노래 해온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깊어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상대편을 설득시키는 것은 아니어도 우리편이 아닌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결국 나의 욕심이겠지. 어느 곳에도 속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무관심 한 반면에 돌아서기도 쉽다. 왜, 목적없이 옷가게에 들어간 사람 붙들고 직원이 신상품 홍보만 열심히 해대면 결국 아무것도 안 사고 나와버리잖아. 소수의 주장이던 다수의 주장이던 똑같이, 집단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권유를 가장한 강요는 언제나 폭력에 가깝다. 나처럼 어느 편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우리편'을 내세우면 정작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망가버리니까 좀 더 영리한 방법은 어떨지 생각해달라고 해봐야 우리편이 되면 다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로 시작 할 것 같으니 말기로 한다. 난 또 도망이나 가겠지 그들의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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