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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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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건 감사한 일이지만, 받지 않는게 원래 당연하다는걸 다들 좀 알았으면 좋겠다. 주는 상대에게 감사함을 가지는 건 맞지만, 주지 않는다고 원망을 가지는건 무슨 도둑놈 심보야 대체. 길가는 사람이 나한테 만원주면 그건 고마운거지만, 그 사람이 나한테 만원 안 주는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다. 아무리 내가 밥을 굶고 배가 고파도 지나가는 사람이 만 원 안준다고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게, 아는 사람 혹은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연관이 되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된다. [ 넌 친구니까, 넌 가족이니까, 넌 애인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이거 줘야 해. ] 라는 말이 오히려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사랑하니까 이걸 줘 - 라며 사랑을 담보로 협박할 거면, 사랑하니까 요구하지 않는 미덕 약간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데, 나는 가진 사람이 되어 베풀고 살고 싶지만, 가진 사람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몇일전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진 사람이 이야기하면 훌륭한거지만, 없는 사람이 이야기하면 거지근성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날 깨닫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내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 나아가서 똥도 남 앞에서는 안 싸야 냄새 안나니 도리라고 생각하는 내 성향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꼬장꼬장하니 확고해진다. 예전에는 내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까지만 생각했다면 요새는 자기 똥 자기가 안 치우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사랑도 없지만 미움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사랑은 적고 미움은 늘어나는 사람이 되어간다. 용납되지 않는 것들을 하나 둘씩 없애고 나니 홀가분해지긴 하지만, 아직은 없어진 것들에 대한 미련이 거뭇거뭇하게 남아있다. 쑥갓은 좋아하지만 마늘은 싫어해서 사람이 덜 된 모양.

사람 관계에 있어서 제일 편한 건,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자세다. 나는 이만큼이나 줬다고 말하는 건 전부 다 바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아니라, 꼭 남겨둬야 할 거라고 분류해둔 것들 다 끌어 안고 하는 투정이니까. 내 인생관을 허물만큼 너에게 충성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는 말이 왜 나쁜 말이 되어야 하나.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건 당연하다. 내 인생을 내던질 만큼의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사랑은 감히 불만 하나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보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에서도 그랬다잖아.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하얗게 불태워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여야 최선이라고 할수 있는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평생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며 살아갈 예정이다. 받는 거 감사하고, 안 받는 거 당연하게 적당히 사는게 뭐가 나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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